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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y 30. 2018

베트남 소스

한 나라의 음식 맛을 결정짓는 여러 요소 중에 절반은 소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새우젓, 식초가 우리나라 음식에서 빠진다고 가정해 보자. 백이면 백 일본음식이라고 착각하거나 환자를 위한 건강식 내지는 특별식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음식도 소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초고추장 없는 회덮밥처럼, ‘느억맘’이 없는 ‘반세오’는 상상하기 힘들다. 칠리소스가 없는 쌀국수도 뭔가 허전하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소스는 ‘느억맘(Nước mắm)’, ‘맘넴(mắm nêm)’, 해선장, 타마린드, 삼발, 칠리, 캐러멜, 연유, 코코넛 등이 있다. 


느억맘은 멸치같이 작은 생선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후에 맑은 액을 걸러낸 것으로, 주 생산지인 판티엣에 가면 느억맘을 담그는 과정을 지켜 볼 수 있다. 간장을 발효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햇빛이 주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에 뚜껑을 덮지 않는다. 대부분 느억맘으로 수익을 내는 곳이라, 마을 전체에 몇 백 년 묵은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질 좋은 느억맘은 항아리에 담그고, 값싼 것은 대량으로 플라스틱 용기에 발효시키니 구입 시에 주의해야 한다. 원 맛은 까나리액젓이나 멸치액젓과 엇비슷하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사용되고, 식탁 위에 디핑소스로 올릴 때는 당근과 파파야, 무, 마늘 고추, 라임 등을 넣고 물을 타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물을 타는 농도가 꽤 중요한데 음식점의 퀄리티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너무 약하면 느억맘의 맛을 상실하고, 너무 강하면 역겨운 맛이 난다.

맘넴파는 보통 맘넴, 맘이라고 부른다. 느억맘과 달리 우리나라의 젓갈처럼 거르지 않은 것을 통칭한다. 액상이 아닌 고형물이 남아있어 걸쭉한 형태를 띤다. 멸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자잘한 생선으로 담가 종류가 다양하다. 중부지방 위쪽으로는 간혹 무침 요리에 사용하거나, 직접 양념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바로 섭취하는 경우는 드물고 요리의 마지막 과정에 쓰인다. 


후에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맘넴을 먹은 일이 있는데, 모양도 맛도 우리나라의 황석어 젓갈과 비슷했다. 완전히 삭히지 않아 생선의 뼈가 살아있는 것이 독특했다. 제주의 멜젓이나 자리젓처럼 음식의 풍미를 더할 때 사용된다.


해선장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소스다. 베트남에서는 관둥어인 ‘호이신’으로 발음한다. 원래 고구마를 삭혀서 만들지만 베트남에서는 대두와 밀가루를 섞고, 그 위에 캐러멜과 색소, 인공조미료를 가미한다. 흉내만 낸 것이라 쌀국수에 올라오는 해선장은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


신맛과 단맛이 절묘하게 배합된 타마린드는 태국 음식에 많이 쓰이지만 베트남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소스다. 우스터는 물론이고, 처트니, 카레에도 필수로 들어가는 재료다. 간식으로도 훌륭해서, 길에서 땅콩처럼 생 타마린드를 까먹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의 타마린드는 좋은 군것질거리다

기본 베이스는 잘 익은 타마린드를 까서 삶아 식힌 후에 으깬다. 여기에 더해 가공을 하면 우리가 아는 타마린드 소스가 되고 설탕과 식초, 고추 등을 넣어 숙성시키면 우스터소스가 된다. 호치민의 한 유명한 반미 집에서는 타마린드에 칠리와 마늘, 생강을 함께 넣어 매운맛으로 승부한다. 줄 서는 문화가 없는 베트남에서도 식사시간만 되면 줄 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삼발은 말레시아 대표 소스로 알려져 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소스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이다. 베트남에서는 생고추를 갈아 마늘과 생강, 소금, 맘넴 등을 첨가한다. 호치민에서는 코코넛을 넣기도 한다. 보통 기름기가 많은 볶음요리에 쓰인다.


삼발처럼 칠리소스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즐겨 사용된다. 흥미로운 것은 나라마다 맛이 다 다르고 종류가 많아서 선택하기 까다롭다. 최근엔 매운맛이 강한 스리라차 칠리소스가 인기다. 태국의 라차 지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코빌지수가 2천 가량 한다. 그에 비해 베트남 칠리소스는 단맛이 있고 스코빌지수를 낮췄다. 새눈고추라고 불리는 프릭키누 함량이 높지 않아, 먹고 나면 입안이 약간 얼얼한 정도다. 쌀국수나 반미에 적당히 뿌려먹기 알맞다.


벗어난 얘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추 애정은 세계 최고를 자부한다. 거기엔 좀 생각해보아야 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십 종의 고추 중에서 녹광고추만 재배한다. 꽈리고추, 오이고추, 청양고추 다 녹광고추에 들어간다. 이런 지나친 편애는 고추의 종자와 GMO 사용, 농약과 수입관세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2003년이었다. 태풍 매미가 훑고 지나간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작물은 거의 없었다. 고추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김치만큼은 담가야 한다는 주부들의 열의에 감동한 정부는 베트남 고추를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그해 김치를 담갔던 주부들은 맛없고 맵기만 한 김치를 처분하지 못해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만두, 김치전, 김치볶음이 다음 해 봄까지 식탁에 올랐다. 밀가루 사용량이 대폭으로 증가한 겨울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고 음식 쓰레기 배출량이 급증해 시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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