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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Jun 15. 2018

좋아한 나머지

세계에서 개를 식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으나, 이 세 나라처럼 대량으로 소비하지는 않는다. 그중 베트남은 자국 내에서 개고기를 충당하지 못해 옆 나라인 태국과 라오스에서 식용 개를 수입할 만큼 소비가 왕성하다. 그 수가 한 통계에 따르면 매년 50만 마리를 넘어선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는 내 눈을 의심케 한다. 한 해에 베트남에서 식용으로 사라지는 개의 수가 500만 마리를 넘는다는 것이다. 인구가 1억 명인 점을 감안하면 스무 명 당, 한 마리의 개를 먹는 셈이다.


지금은 찾기 힘드나, 내가 살던 때 만해도 베트남 시장에서 개고기는 아주 흔했다. 하다못해 반미에 버젓이 양념한 개고기를 넣어 파는 집까지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거래처에서 나를 개고기집에 데려갔었다. 2군에 있는 사이공 강어귀의 한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으나, 함께 간 우리 회사 베트남 직원이 엄지를 치켜세웠기 때문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거래처 사장은 2층으로 올라가 뭔가를 푸짐하게 시켰다. 벽에 붙은 차림표의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귀한 손님이라고 특별한 것을 더 주문한 것이 분명했다. 차가운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자, 음식들이 하나둘 차려졌다. 뭔지 알 수 없는 탕과 볶음, 수육 등이었다. 대낮인데 술도 한 병 나왔다.


거래처 사장은 건배를 하고 내게 먼저 음식을 맛보라고 권했다. 그는 채소에 수육을 올리고 소스를 찍어 직접 건네주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첫 잔과 첫 안주를 손님에게 양보하는 관습이 있다. 첫 잔은 비우는 것이 예의다. 나는 그가 주는 쌈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미묘한 맛이었지만 향신료가 강해서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두 점 집어먹고 있는데, 거래처 사장이 끓고 있는 탕의 뚜껑을 열어 채소와 각종 허브를 넣었다. 그는 국자로 휘휘 저었다. 그때였다. 뭔가 굵직한 것이 국자에 걸려 육수 위로 올라왔다. 그건 어떤 동물의 다리였다. 나는 기겁을 했다. 하나도 가공되지 않은 다리를 통째로 본 건 족발을 제외하고 그때가 처음이었다. 발톱과 발의 모양이 너무도 선명했다.


무슨 고기냐고 묻기도 전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베트남 직원과 거래처 사장은 새파랗게 질린 내 표정을 보고 웃었다. 그날 거래처 사장의 융숭한 대접은 나의 허약한 비위로 빠르게 막을 내렸다. 탕에 면을 넣어 끓이는 마지막 단계는 넘어가지도 못했다. 직원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속이 느글거려서 혼났다. 진한 커피를 넉 잔이나 마셔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개는 또 엄청 좋아한다. 거리에서 개와 노는 사람들을 보면 개에 대한 사랑이 어찌 저럴까 싶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그들은 개를 묶지 않는다. 오토바이가 휙휙 지나가는 사이에서도 거침이 없다. 묶이지 않은 개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개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개에게 냄새 맡는 행위는 인간이 다른 대상과의 소통만큼 중요하다. 산책이 필수인 이유다.


개고기 유통과 식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여행에서 자유롭게 사는 베트남의 개를 보면서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개의 해라 그런지 더 그랬다.


제주도도 그런 점에서 베트남 못지않는 좋은 환경이다. 함부로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비교적 도심보다는 허용되는 범위가 넓다. 그런 제주에 유기견이 많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개체가 자연분만에 따른 증가 치를 넘어선다. 우리 가족은 해안가를 따라 돌아가며 캠핑을 자주 하는데, 작년부터 부쩍 캠핑족이 먹다 버린 음식을 노리는 유기견이 많이 보였다. 금능과 표선이 유독 심했다. 


화순해수욕장이었다. 여름 전이라 인적이 없었다. 렌터카 한 대가 달려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내렸다. 남녀 한 쌍이 개들과 재밌게 노는 것으로 보였다. 공을 던지면 개가 물어왔다. 주인은 점점 멀리 공을 던졌다. 그러다 주인은 개가 공을 찾으러 간 사이,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개는 주인을 찾아왔던 길로 뛰어갔다. 두 마리의 개는 금세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목격한 아내는 차 넘버를 보지 않은 것에 분개했다. 


한라산을 넘다 보면 개들이 인적 없는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두 버려진 개들이다. 작은 종은 죽고 큰 종이 살아남아, 들개가 된다. 이런 들개는 떼를 지어 다니며 고양이나 족제비, 다람쥐, 새를 사냥한다. 제주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일이다.


우리 집 개도 유기견이다. 판포리에서 떠돌던 녀석을 데려와 가족이 되었다. 3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마음에 상처가 남아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버림받은 기억은 쉽게 아물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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