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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Jul 05. 2018

과일의 제왕, 두리안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들에게 베트남 과일을 다 먹여주고 싶었다. ‘망꺼우(sugar apple)’와 ‘탄롱(Dragon Fruit)’은 종종 볼 기회가 있었으나, 냉동되지 않은 생과일 형태의 ‘쩜쩜(rambutan)’과 ‘냔(Longan)’, ‘망꿉(Mangosteen)’과 ‘바이(Thieu litchi)’는 처음이었다. 우리 가족은 수박과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매일 밤 바꿔가며 먹어치웠다. 또 나에게도 생소한 ‘망’이라는 이름의 자두와 ‘꺽’, ‘부스아’도 먹었다. 특히 ‘얀야이(chanh dây)’의 매력을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2개에 15,000동. 파인애플 한 개 당 400원 꼴이다. 2018년 현재 베트남 시장에서의 시세.

그래도 과일 하면 역시 ‘서우리엥(Durian)’이다. ‘밋(Jack fruit)’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당도와 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이공 스카이덱 근처의 한 제과점에서 두리안 케이크를 팔기에 한 팩 샀더니, 냄새만 맡고 다들 고개를 저었다. 웬 떡인가 싶어 혼자 신나게 먹어치웠다.


두리안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참 부끄럽고 어리석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가족들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베트남의 과일 맛을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나는 시장에 가 살 수 있는 과일은 죄다 긁어모았다. 당시엔 꽤 진지해서 냄새와 과일의 보존을 고려해가며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더랬다. 거의 다 포장을 하고 마지막에 두리안이 남았다. 듣기로 두리안은 호텔조차 반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두리안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벌금형에 처한다는 소문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랩으로 꽁꽁 싸고 비닐로 몇 겹을 덮어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과일을 모두 포장했더니 하드 캐리어 하나가 꽉 찼다.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공항으로 갔다. 위탁 수화물로 과일 가방을 보내고 보딩 패스를 끊어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이보다 적절하기는 힘들다.

성공이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항공사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네가 공항에 두리안을 반입한 놈이니?”

어떻게 알았지? 이런 개코를 봤나? 그녀의 코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또 다른 직원이 과일이 담긴 내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위탁으로 보낸 짐이 대기실에 있는 승객 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나는 발뺌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서 가방을 받았다. 과일 캐리어를 끌고 온 공항직원은 내게 얼른 풀어보라고 지시했다. 매우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였다.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가방을 해체했다. 과일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심에 랩으로 둘둘 말린 질식하기 직전의 두리안이 있었다.


긴 정적이 흘렀다. 나는 공항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중년에 접어들어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호치민 공항 역사상 이런 진상은 처음이라는 듯이 그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너 과일장사 하니?”


나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이라고 답했다.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애절하게 그리고 같은 유교국가의 후손으로서 그의 효심에 간곡히 호소했다.

그게 통했는지, 아니면 귀찮았는지, 그의 입에서 그냥 가져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대신 위탁은 안 되고 기내로 가져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런 횡재가 있나. 전부 압수당할 줄 알았던 나로선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다른 건 몰라도 두리안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먹어치우던지, 포기하던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두리안이 아까웠다. 가격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여기서 먹어요?”

나는 내가 서있는 게이트 앞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만약 그곳에서 두리안의 두자라도 꺼내는 날에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기가 느껴졌다.

“밖에서.”

OUT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큰 소리로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항담당자는 야구경기의 주심처럼 공항 밖으로 손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순으로 검색대를 지나, 출국심사대를 건너,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라는 소리였다. 들어올 때는 처음부터 다시 그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나는 두리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두리안을 들고 사라지는 공항직원의 뒷모습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귀국하는 날 저녁, 나는 가족을 불러 성대한 열대과일 파티를 열었다. 두리안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왜 과일의 제왕이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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