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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Jul 12. 2018

Coffee is my life

베트남 위즐 커피

Coffee is my life. 베트남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본 문구다.

나는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믹스만 마셨다. 커피 고유의 향보다 달달한 맛을 즐기는 후진 입맛이었다. 그러다 베트남에 살게 되면서 ‘젠장’ 커피의 맛을 알아버렸다. 


맛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제일 먼저 단맛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크면서 짠맛을 좋아하게 된다. 그 단계를 넘어가야 쓴맛과 신맛, 매운맛을 알 수 있다. 떫은맛도 그중의 하나다. 덤덤한 맛을 알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성인이 되듯 여기까지는 누구나 거치는 단계다. 그러나 고수들은 그 이후를 갈구한다. 진정한 맛의 결정체는 다음 단계에 숨어있다. 


가장 좋은 맛의 치즈는 구린내가 난다. 가장 좋은 와인 역시 그렇다. 사람들은 이런 맛을 ‘썩은 퇴비’라고 표현하거나, ‘시궁창 냄새’라고 말한다. ‘비에 젖은 강아지의 비린내’라고도 한다. 과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두리안도 구린맛을 가지고 있으며, 잘 삭은 홍어와 된장도 구린맛이 난다. 일본에서 가장 좋은 가쓰오부시를 만드는 가게는 멀리서도 그 냄새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맛있는 청국장일수록 구린내가 심해서 10년은 족히 넘은 양말을 함께 삶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나 곰삭은 맛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최고로 친다. 내가 터키에서 먹은 케밥 중에 어떤 특제소스(생선을 삭힌)는 구토를 유발할 만큼 냄새가 고약했으나, 며칠 뒤 그 소스가 아니면 손을 떨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이탈리아의 진짜 발사믹은 뚜껑을 열고 냄새 맡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학자들 중에 인간이 이런 구린 맛을 선호하는 이유가 아미노산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암모니아의 변형을 뇌가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커피도 그렇다. 며칠 화장실 변기에 담가 둔 것처럼 좋은 커피는 구린내가 난다. 사향고양이의 변에서 뽑아낸 루왁이라는 커피가 유명해진 것이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중에 하나가 커피 또한 발효식품이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커피는 정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미생물들에 의한 발효가 일어난다. 그래서 커피 업자들은 유산균과 미생물, 곰팡이, 효모를 섞어 원두의 맛과 향, 품질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원두 자체의 우수성보다 발효의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차별화의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엔 샴페인 양조용 효모를 이용하여 만든 인공 발효향을 생 원두와 섞어서 시장에 내놓는다. 

     

아내와 달랏에 갔을 때였다. 우리는 커피농장을 방문했다. 여러 종의 커피가 재배되고 있었다. 직접 체험을 하고 맛도 보았다. 그러던 차에 농장 한 구석에 동물 사육장이 눈에 띄었다. 커피농장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이었다. 철조망 안에는 노루, 사슴, 청설모, 여우, 족제비 등 다양한 동물이 있었다. 


당시 루왁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루왁은 말레시아 말로 사향고양이를 뜻한다. 말레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지에서 소량으로 생산된다. 베트남으로써도 뭔가 대안이 필요했다. 하지만 애로사항이 많았다. 농장 측에서는 사향고양이에게 생콩을 사료로 주기 힘들고, 설령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변을 한다고 해도 그 양이 너무 적어서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사향고양이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사육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철조망에 갇힌 동물들은 그 대안인 셈이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일부 동물의 변이 생산화에 성공해서 제품으로도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에 가보니 종류가 더 많아졌다. 똥이란 똥은 죄다 커피 생산의 중요한 자원으로 쓰였다. 다람쥐 똥은 아예 상표로 등록되었다. 가장 가능성이 보였던 노루는 커피콩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 때문에 상품화하지 못했고 여우와 족제비가 그나마 괜찮았다. 이런 식이면 조만간 돼지 똥도 갈아서 마실 판이었다. 가장 성공한 것은 족제비의 똥으로 만든 ‘위즐 커피’였다. 위즐은 베트남에 많이 서식하는 족제비의 한 종류다. 위즐의 성공에 힘입어 베트남의 커피시장은 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위즐커피 이미지출처 http://www.huongmaicafe.com

원체 베트남은 커피로 유명했다. 국토의 75%가 산악지형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좋은 고산 기후를 지니고 있다. 커피 생산량이 세계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높다. 뒤를 잇는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에티오피아를 합산한 생산량보다 많다. 


이번에 다녀보니 호치민은 세계 유명 브랜드의 각축장이었다. 한 집 건너 하나가 커피전문점이었다. 흡사 베트남 시장에서 살아남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향후 세계 커피시장의 장악력을 판가름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브랜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뉴욕 디저트 커피(NYDC)’와 호주 커피 체인점인 ‘글로리아 진스’ 커피는 일찍이 문을 닫았고, 2003년에도 있었던 ‘일리’는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은 유명세에 비해 초라했다. 중심가에서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고작 3개점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카페베네’의 진출은 반가웠다. 반면 현지 브랜드로, 전통의 강호인 ‘하이랜드’의 입지는 공고했고, ‘콩 카페’ 같은 신생 커피전문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베트남 사람들은 헤이즐럿 향을 좋아해서 개암나무를 원두에 훈연한다. 그 밖에 옥수수나, 버터를 넣고 로스팅하는 것을 즐긴다. 또 커피를 짧은 시간에 진하게 내린 후, 연유를 타고 얼음을 넣는다. 혹자는 커피 본연의 순수한 맛이 아니라고 평가절하 하지만, 이러한 습성이 고착된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을 외국 브랜드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자국 내에서 새롭게 개발된 커피가 있었다. 커피에 코코넛을 넣은 ‘코코넛 커피’였다.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날계란을 넣은 ‘에그 커피’도 그에 못지않았는데, 아직 다방문화가 남아있던 90년대 충무로에서 맛보던 커피와 흡사했다.


하지만 진정한 베트남 커피의 매력은 시장에 가야 알 수 있다. 하루에 한 번씩 커피를 로스팅하고 갈아주는 가게가 시장마다 하나씩 있다. 자체로 브랜딩을 하는 곳도 있고,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블루마운틴 등 종류를 바꿔가며 로스팅하는 가게도 있다. 사람들은 그날 마실 커피를 봉투에 담아서 집으로 간다. 산지에서 갓 볶은 커피의 향은 아주 좋은 구린내가 난다. 젖만 먹는 갓난아기가 뀐 방귀 냄새처럼.


베트남에서 다녀온 뒤 나는 하루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밥을 먹지 못해도 커피를 끊은 적은 없다. 금식을 해야 하는 날에도 의사 몰래 마셨다. 그동안 간 원두가루만 모아 한 곳에 버렸어도 간척사업으로 새만금 옆에 작은 땅을 마련할 정도였다.


혀는 알수록 복잡한 기관이다.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표면은 수많은 미뢰로 덮여있다. 미세한 돌기는 각종 신경세포의 집합체다. 혀는 한 번 맛 본 건 영원히 기억한다. 모국어가 그렇듯 나에겐 커피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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