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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Dec 22. 2018

최소의 존엄

우리는 어떻게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2001년이었다. 압구정동에서 일을 보고 충무로로 점심을 먹으러 가던 참이었다. 대략 오후 한 시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동호대교를 건너갈 때까지만 해도 원활하던 차량 진행이 옥수터널 앞에서 정체를 맞았다. 출퇴근 시간대도 아니고, 상습 정체구간도 아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차는 급기야 금호터널 앞에서 설설 기기 시작했다. 금남시장으로 빠져 신당동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한남대교 북단으로 방향을 틀어 남산을 넘을까 망설이다가 때를 놓친 나는 운전대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쨌든 차는 찔끔거리나마 진행이라는 것을 하기는 했다.


금호터널에 들어서서 차가 막힌 이유를 알게 됐다. 사고가 있었던지 경찰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교통사고와 다르게 출동한 경찰이 꽤 많았다. 경찰은 차선을 막고 다른 한 개의 차선으로 차량의 통행을 유도했다. 


차례가 되어 슬금슬금 사고 현장을 지나치면서 힐끔 옆을 보았다. 오토바이가 한 대 쓰러져 있었다. 오토바이 뒤에 노란 플라스틱 콩나물시루가 달려 있는 게 보였다. 차가 빠지면서 속도가 붙었다. 한 10미터 갔을까? 경찰들이 오락가락하는 발밑에서 뭔가 검은 물체가 보였다. 얼핏 공처럼 보이긴 해도 그건 분명 사람 머리였다. 잠이 확 달아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말고도 다른 차들이 많았다. 여성운전자도 있었다. 개중에 아이들이 탄 차량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보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음식 배달통이 흩어져 나뒹구는 것을 보며 그렇게 50미터쯤 직진했나? 이번엔 머리가 잘려나간 몸뚱이가 보였다. 그 옆엔 경찰조차 없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이 떨렸다. 얼마 달리지 못하고 장충동 길 가에 차를 붙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담배 두 대를 피웠다. 처음엔 사고처리에 미숙한 경찰을 원망했다. 하얀 천만 덮었어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지 않았을 터였다. 어떻게 목적지까지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점심은 물론 저녁도 먹지 못했다.


사고 경위가 궁금했다. 인터넷을 열어 그날 발생한 사건사고를 조회했다. 사망자의 신원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그다음 날, 그리고 그 다다음 주까지 금호터널에서 일어난 사고는 기사, 부고란 어디에도 한 줄 실리지 않았다.


한 달가량 그날의 여파가 지속됐다. 밥 먹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사는 게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고 없이 그냥저냥 살다가 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과속을 했건, 신호 위반을 했건, 하필 사고가 나도 그런 사고가 났을까? 나보다 많아야 대여섯 살 더 먹었을 그 젊은 청년의 삶이 애처로웠다.     



지난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있었다. 석탄 운송설비를 점검하던 20대 청년이 컨베이어에 머리가 끼어 사망했다. 뉴스가 쏟아졌다. 회사는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자마자, 곧바로 컨베이어를 가동했다. 사고 후 시신을 방치한 채, 한 시간이나 대책회의를 했다. 사망자는 사고 당시, 2인 1조가 아닌 혼자였다. 유품에서 시꺼먼 석탄가루가 묻은 컵라면이 나왔다.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한 동료 선배의 인터뷰를 들었다. ‘손을 잡아당기다가, 용균이의 머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는 흐느꼈다. 현장을 목격한 그가 과연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게 될까, 나도 눈물이 났다.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곳곳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소리친다. 2016년, 구의역 지하철 사고 때도 그랬다. 하지만 3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한 해 산재로 사망하는 사람이 질병, 사고를 합산해 2천 명을 넘는다. OECD 중 단연 최고다. 3시간마다 누군가 죽고, 5분마다 누군가 다친다.


바스키아의 그림이 떠올랐다. 아무렇게나 막 휘갈긴 그의 낙서 그림이 어쩌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은 대물림된다. 적당히 나쁜 짓을 하더라도 부자만 되면 괜찮다. 그 과정에서 타인을 시기하고, 깔아뭉개고, 혐오하고, 학대한다. 그러고는 돈 뒤에 숨어서 고상한 척한다. 그러면 용서가 되는 것을 우리는 지난 반세기가 넘게 지켜보았다. 생산성, 효율성이란 미명으로 누군가 쥐어짜도 괜찮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학습시킨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괴물이 된다. 괴물이 사고를 치면 저들은 우리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밑으로, 밑으로 폭력이 가중되어 계급사회가 고착된 지 오래다. 가르고 나누고 분리한다. 세상은 점점 쪼개져 가루가 된다.


바스키아의 머리가 잘린 그림을 보면서 이보다 세상을 더 잘 표현한 방식이 있는지 고민한다. 그동안 낙서라고 홀대한 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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