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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준 Dec 08. 2022

호모 사피엔스

폭력을 받아드리고, 편안함을 찾으세요.

내 인생의 동력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질문으로 발전한다. 내 호기심은 두 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상호 보완적이다. 내가 누군지 알려면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다른점도 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주관적이고,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객관적이다. 따지자면, 철학과 과학의 차이다. 철학은 개인의 주관적 삶에 가깝고, 과학은 인류 전체의 보편적 지식에 가깝다. 


오늘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현대 인류의 조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 인류의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개별 개체의 피지컬은 볼품 없다.

근본은 포유류다.

대뇌 피질의 크기가 크다.

집단의 규모가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크다.

집단적 폭력이 가능하다.

하나씩 알아보자.


호모 사피엔스는 약하다.

개별 개체의 물리적 특성은 상당히 약하다. 제대로된 이빨과 발톱도 없고, 힘이 아무리 세봤자, 덩치큰 개 한마리조차 이기기 힘들다. 민첩성과 속도도 고양이에도 못미치고, 달리기는 덩치큰 멧돼지나 곰보다 느리다. 원숭이보다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며, 물속에서는 붕어보다 느리다. 인간을 동물로 본다면, 개별 개체는 먹이사슬 최약체에 속한다. 하지만 인간이 잘하는게 딱 한가지 있다. 바로 던지기다.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창’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포유류다.

인간은 포유류다. 포유류는 감정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이 감정이 있지만, 포유류의 감정이 가장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렇다면 감정은 왜 필요한가? 내가 알기로 감정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감정은 크게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나뉜다. 좋은 감정은 인간의 생존에 연결되고, 나쁜 감정은 인간의 죽음에 가깝다. 하지만 더 중요한 감정은 나쁜 감정이다. 공포와 불안은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다. 사자가 내 앞에 나타났는데, 기쁨을 느낀다면 나는 죽는다. 그렇다. 인류에게 더 필요한 감정은 공포와 불안과 같은 나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은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는 인간을 행동하거나, 생각하게 만든다.


대뇌 피질의 크기가 크다.

대뇌 피질의 크기가 크다는건 이성적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계획적이고, 전략적이고, 언어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공간지각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집단의 규모가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크다.

포유류 중에서 집단의 규모가 가장 큰 동물은 원숭이나 침팬지다. 이 친구들은 최대 110~120 마리의 집단 생활을 한다. 인간은 어떠한가? 마음만 먹는다면 16억명 까지 가능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의 숫자가 16억이기 때문이다. 그 집단의 이름은 이슬람이다. 단일 종교로는 최대 규모다. 카톨릭과 개신교를 합치면 이슬람보다 많지만, 찢어놓으면 각각의 종교는 이슬람보다 수가 적다. 불교는 6억 정도이다. 인간은 종교, 철학, 사상, 국가, 기업 하다못해 동호회등을 만들었고, 해당 집단의 크기를 키워왔다. 집단의 크기는 곧 생존력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집단의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생존했다.


집단적 폭력이 가능하다.

집단을 키운 인간은 집단적 폭력이 가능하다. 집단적 폭력의 전제조건은 집단적 전략이다. 전략이 수립되려면 상호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편의 감정을 이해하고, 우리편의 생각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서 전략을 세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조질 전략을 짠다. 그리고 다같이 창을 들고 집어 던진다. 창은 때로는 물리적 폭행일수도 있고, 폭언일 수도 있고, 따돌림과 같은 감정적 고립이 될 수도 있다.


이 내용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얻은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한 인간에 대한 지식을 더해서 작성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은 악하다는 것이다. 최초의 사피엔스가 지나간 길에는 죽음뿐이었다. 집단적 폭력으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고, 수 많은 동물이 멸종했다.


인간은 악하다. 인간이 선하다는 말은 아주 순진한 소리다. 이타적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사회적으로 잘보여서 생존력을 높이는 것이고, 이기적이라는 말은 대놓고 나의 생존력을 높이겠다는 말이다. 공통적으로 생존을 위한 일에 불과하다. 여기에 숭고함이나 선함이나 고결함같은건 허상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내가 사피엔스의 후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가 언제든지 폭력적일 수 있다는걸 인정해야 한다. <킹스맨> 1편의 마지막 장면처럼 대뇌가 꺼진 인간은 폭력과 살육만 남게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는 수 많은 컴퓨터 게임을 접하면서 나의 폭력성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알게 되었고,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폭력을 경험했다. 물론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폭력을 경험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성장했다. 내면의 폭력성을 인정하고 난 이후로 나는 성장했다. 폭력을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니야,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었어” 이런 말들은 수용을 막는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타인에 대한 수용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인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수용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되고, 내가 나를 전부 수용한다. 나의 감정을 수용하고, 나의 생각을 수용하고, 나의 폭력성을 수용한다. 그리고 나를 수용하는 만큼 타인을 수용한다. 받아드린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드린다.


그래야 내가 불편하지 않게 된다. 내가 나를 수용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배척하게 된다. 배척당한 나는 불편함을 남긴다. 내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불편해하는 만큼 타인이 불편해진다. 내가 나를 편안해하는 만큼 타인이 나를 편하게 느낀다.


그러니 수용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한다. 우리는 슬프게도 호모 사피엔스고, 사피엔스는 폭력적이다. 하지만 폭력의 근원은 생존이고, 생존은 선악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폭력성도 선악이 없다. 지구라는 정글에서 살려고 하다 보니 우리는 이렇게 된 것 뿐이다. 그러니 선하니, 악하니, 진실이니, 거짓이니 하는 가치판단은 집어치우자. 그냥 받아드리자. 그래야 내가 편할 수 있다. 내가 편해야 타인도 나를 편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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