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솔향기 언덕._국정교과서연수원
.한 달 전쯤, 이곳을 먼저 다녀온 A언니가 나를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떠나게 된 곳, 양양의 ‘솔향기 언덕’.
전날 폭설이 내려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아침에 눈이 그쳤다.
갈 수 있게 허락된 하루 같아 출발부터 마음이 가벼웠다.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아 평소보다 한 시간 넘게 걸렸지만, 차 안은 과일과 떡, 삶은 밤과 볶은 은행으로 가득했다.
소풍을 가는 기분이었다.
늘 그렇듯 A언니는 먹을 것을 넉넉히 준비했고, 함께 간 사람은 묵묵히 운전대를 잡았다.
그 살뜰함이 이 여행의 바탕이 되었다.
도착한 연수원은 생각보다 훨씬 단정하고 말끔했다.
입실까지 시간이 남아 늦은 점심을 먹고, A언니가 꼭 보여주고 싶어 했던 1층의 ‘로그 북카페’로 향했다.
넓은 창 너머로 솔숲이 펼쳐지고, 편안한 의자와 쇼파가 자연스럽게 몸을 풀어준다.
사람도 많지 않아 공간은 느슨했다.
마치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 같았다.
책을 몇 권 가져왔지만, 결국 책장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한 권, 또 한 권 제목을 따라 눈이 움직였다.
— 박홍규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정호승 『울지 말고 꽃을 보라』
— 이해인 『이해인의 말』
30분 넘게 서성이다 손에 쥔 책들.
그날은 읽어야 할 책보다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책’을 고르고 싶었다.
나는 그날 ‘조금 이기적으로 살자’고 마음먹었다.
혼자 책을 읽고 싶다고 했을 때, A언니와 함께 간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A언니는 옆 쇼파에서 잠깐 낮잠을 자고, 함께 간 사람은 반신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의 시간을 이렇게 존중받는 경험은 생각보다 깊은 위로였다.
올해의 나는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쉬면 불안해하던 사람이, 이제는 ‘쉼이 채워주는 기쁨’을 안다.
삶에 여유의 공간을 만들고, 쉬는 날엔 그 안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다.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들뜨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이 변화가 참 고맙다.
저녁에는 특별히 준비된 우럭조림을 먹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달랑무우김치’였다.
세 번째 종지를 비우자 사장님이 웃으며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구수한 농담과 함께 김치를 내어주셨다.
음식보다 사람의 온기가 먼저 남는 저녁이었다.
식사 후 다시 북카페로 향했다.
카페가 닫히는 시간이 빨라 아쉬웠지만, 하루에 두 번이나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은 조금 심심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책에 빠져 있는 시간을 끝까지 존중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새벽에 잠시 눈을 떴을 때, A언니가 손짓으로 ‘더 자라’고 했다.
다시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어느새 아침이 깊어 있었다.
이미 준비를 마친 A언니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고 했다.
‘푹 자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이 이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 바다에 잠시 들렀다.
수천 마리의 갈매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날고 있었다.
영화 ‘노트북’의 사이프러스 가든 장면이 떠올랐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짧았기에 더 충만했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많이 채워졌던 여행.
양양에서 나는 ‘쉬는 법’을 다시 배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