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는 빼앗길 수 있지만, 선택은 빼앗기지 않는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한명회 앞에서 단종이 던진 이 질문은
왕의 언어라기보다
길을 잃은 소년의 언어였다.
왕이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해본 적 없는 삶.
즉위도
폐위도
유배도
모두 타인의 결정 속에서 흘러갔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그는 왕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한 소년이었다.
영월의 작은 마을 광천골.
이곳의 촌장 엄흥도는
권력 바깥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우연히 노루골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생계를 위해
유배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에게 유배객은
정치적 존재가 아니라
마을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사람은
폐위된 왕, 노산군이었다.
환영받지 못한 노산군이었지만
광천골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고
강을 함께 바라보고
같은 시간을 견디는 사이
왕과 백성이라는 경계는
조금씩 흐려진다.
그 자리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천천히 놓이기 시작한다.
청령포에서 시간이 흐르며
노산군은
자기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 삶을 아느냐.”
그는 이제
삶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왜 하늘이 아직까지
나를 이승에 머물게 했는지…”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자기 삶을 붙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말한다.
“나는 멈추지 않겠다.”
그 말은
왕위를 되찾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자기 삶을 선택하겠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거사를 위해
금산군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 직전.
단종은 더 이상
흔들리는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왕으로 선 사람’이었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없었고
상대를 눌러버리는 권위도 없었다.
다만
‘나는 왕이다’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그는 엄흥도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품었다.
천민이었던 엄흥도를
왕의 시선으로 끌어올려
같은 역사 속에
나란히 세워 주는 느낌이었다.
초반의 왕이
고립된 신분과
유배된 권력이었다면
그 순간의 노산군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왕이었다.
왕위는 빼앗겼지만
왕다움은
빼앗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눈빛이
유난히 결기로 빛났다.
“더 이상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이 말은
왕의 언어이면서도
사람의 언어였다.
자신을 지켜 준 사람을
지키고 싶은
한 인간의 언어.
엄흥도가 묻는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그 질문은
신하의 질문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당신의 선택 안에 있습니까.
나는
당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입니까.
그 순간 단종은
왕이 아니라
곁에 함께 가는 사람으로
엄흥도와 나란히 선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슬픈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꾸며낸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로 남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묻던 사람이
마침내
“나는 멈추지 않겠다”라고 말하게 되는 이야기.
왕의 자리는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빼앗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