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처음 마주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들이 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함께 있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지는 사람들. 그런 만남은 흔하지 않아서 더 귀하다. 이번 1박 2일 양양 샌드파인 골프 여행은, 바로 그런 사람들 덕분에 시작부터 마음이 풀어지는 시간이었다.
강릉까지 먼 길을 함께 운전해주며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 분, 말끝마다 “언니가 최고야”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던 후배 덕분에 이틀은 가을 소풍처럼 흘러갔다. 날씨마저 화창해, 사람들의 마음을 닮은 하루였다. 서로를 챙기며 웃고 이야기하는 사이, 마음속까지 포근해졌다.
골프 역시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싱글을 자처하던 대표님을 연이어 이겼을 때의 짜릿함은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여러 곳을 알아본 끝에 강릉에서 가장 맛있다는 횟집으로 안내해준 정성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살아 움직이던 다금바리를 앞에 두고 맛본 회의 신선함은,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음식조차 특별해진다는 걸 알려주었다. 감사와 기쁨이 차곡차곡 쌓인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유독 마음에 남았던 사람이 있다. 늘 나눔을 먼저 떠올리는 분이다. 사무실에서 직접 기른 늙은 호박을 지난번에는 양양으로, 이번에는 강릉까지 다섯 개나 챙겨왔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늘 행동으로 먼저 나온다. 여행용 드라이기를 선물받고 너무 좋았다며, 함께 쓰고 싶다고 새 세트를 여러 개 더 가져온 정성 앞에서는 말문이 잠시 막혔다. 가방을 열 때마다 쏟아지는 마음에, 감사는 저절로 따라왔다.
골프를 칠 때도 그 사람은 늘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든다. 구찌조차 칭찬으로 건네며 분위기를 밝힌다. 골프를 명랑한 스포츠로 즐기고 싶은 나에게 그 배려와 센스는 게임 이상의 즐거움이 된다. 그린을 정리하는 분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는 모습에서도, 일하는 사람의 노고를 귀히 여기는 태도가 느껴진다.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울림을 만드는지, 그를 보며 다시 배운다.
강릉을 오가는 길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각자의 삶에서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건네며,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주 보자는 약속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함께 성장하는 시간은 늘 이렇게 조용하지만 깊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배우고, 그 안에서 다시 용기를 얻는다. 이 인연의 결에 감사가 깊어진다.
샌드파인에서 만난 두 분의 프로 캐디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골프를 친 지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잔디의 결을 완벽히 읽지 못하는 나에게, 라이를 정확히 봐주는 캐디의 존재는 마음을 먼저 안정시킨다. 그 안정감은 곧 신뢰로 이어지고, 퍼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두 분은 성심껏 라인을 살피고, 자신의 관점을 차분히 설명해주며, 내 플레이를 유심히 보고 필요한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잘할 때마다 건네준 응원은 큰 힘이 되었다. 어디서든 맡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저절로 응원 쪽으로 기운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강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른 감사가 찾아왔다. 전화를 건 아들은 손주를 데리고 집에 오겠다고 했다. 운전을 시작한 뒤로 집을 오가는 길이 한결 편해져 마음이 놓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손주는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며칠 사이 얼굴이 달라진 것을 보며, 아이의 성장은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충분히 시간을 내주지 못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 한켠이 저릿해진다.
그래서인지 손주를 돌보는 며느리의 모습이 더 깊이 다가온다. 이유식을 정성껏 만들고, 놀 때와 울 때마다 다른 목소리로 아이를 다독이며, 작은 놀이로 아이의 눈빛을 밝히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다. 매사 배울 점이 많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를 꼼꼼히 챙기는 부지런함과 넘치는 사랑에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늦은 나이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좋은 어른, 더 좋은 시어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이 하루는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덕분에 오래 남았다.
사람을 통해 배운 마음과 태도, 그리고 시선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