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가다_1일차

첫 번째 날, 섬의 시간에 닿다

by 여울


강릉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하는 시간은 약 세 시간 반.

배가 항구를 떠나자 바다는 곧 육지의 감각을 지워낸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일상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배는 만석이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 섬을 향하고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미를 걱정했지만,

미리 준비한 약 덕분인지 몸은 의외로 편안했다.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고,

배는 묵묵히 울릉도를 향해 나아갔다.


한참을 달리다

수평선 위로 섬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작은 환호가 터진다.

바로 저 장면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는 이유.

머릿속에만 있던 장면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열린다.


울릉도에 닿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공기의 다름’이다.

비릿하면서도 맑은 냄새,

바다와 숲이 섞인 향 속에서

섬의 시간이 시작된다.


첫 식사는 산채비빔밥.

더덕무침과 더덕절임, 묵무침, 명이나물까지

울릉도에서 자란 산나물들이 한 그릇에 담겼다.

화려하지 않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산의 향이 인상 깊었다.

자연을 먹는다는 표현이

이럴 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섬을 도는 길은 그 자체로 풍경이었다.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도로,

곳곳의 외길 구간에서는

신호를 두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조금 불편해 보였지만

그 불편함이 자연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너무 많은 편리함이

풍경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해왔으니까.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기암괴석들이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다.

거북바위, 얼굴바위, 투구봉, 사자바위, 코끼리바위.

이름을 얻은 바위들은

더 또렷한 존재로 다가온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태하모노레일을 타고

푸른 절벽 위로 천천히 올라간다.

바위에 몸을 붙인 채

해풍을 견뎌낸 해국들이

마치 오는 이들을 맞이하듯 피어 있었다.

작고 단단한 꽃들이

이 섬의 시간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나리분지에 이르자

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평온한 들녘,

멀리 흰 구름을 얹은 산그리메들.

그 모습이 문득

어린 시절의 산자락과 들판을 떠올리게 했다.

나리분지를 바라보며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생각들이

빨래하듯 씻겨 내려간다.


군데군데 하얗게 핀 울릉국화는

이 섬에서만 자라는 꽃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쉽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꽃을 더 귀하게 만든다.

이곳에는 향이 멀리 퍼진다는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도 있다.

사람의 욕심으로 터전을 잃고

이제는 바람 센 절벽에서만 자라는 나무들.

그 자리에서라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조용히 마음속 박수를 보낸다.


저녁에는 약소구이를 먹는다.

울릉도의 소는

산더덕, 오미자, 헛개, 황기, 구기자 같은

산약초를 먹고 자라 ‘약소’라 불린다고 한다.

육질은 부드럽고

단맛은 깊으며

은은한 약초 향이 남는다.

이 섬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한 점 한 점을 더 집중하게 만든다.


식사가 끝날 즈음,

섬의 하루도 함께 저물어간다.

낯선 풍경 속에서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다.


숙소는 산 위에 자리한 리조트.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일출과 일몰이 모두 가능한 자리다.

밤이 되자

창밖의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가 잔잔히 들려온다.


첫째 날,

울릉도는 그렇게

차분하게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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