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by 여울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_강원국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한 농부들은
슬슬 가지치기를 준비한다.

나무가 햇빛을 고루 받아
건강히 자라게 하려면
말라 죽거나 길게 늘어진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제멋대로 뻗어나가 뒤엉킨 가지는
나무에도 스트레스여서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튼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료 등과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간다.

이 가운데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만남도 있지만,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되는
만남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가지를 뻗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쓸데없이 웃자란 관계를
쳐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

관계가 성장을 넘어
성숙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엉켜 있는
가지치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관계를 정리하는
나름의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어야 한다.

나의 기준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첫째, 상대방과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면
하루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과 친하다고 여기는데
정작 그 사람은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고 내가 필요로 할 때는
만나주지 않는 관계는 끊는 게 맞다.

5:5의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10:0이나
9:1의 일방적인 관계를 용인해선 안 된다.
이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게는 잘해주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몰지각하고 몰염치한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하는 게 좋다.

식당에 가서 종업원에게 함부로 하거나
새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

셋째, 믿을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도
정리 대상이다.

밥 먹듯이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내가 없는 데서
나를 험담할 사람이며,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사람이다.

이런 관계는
버림을 당하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한다.

넷째, 만나면 푸념과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은 멀리한다.

매사를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장점보다 단점만 보고,
이를 방법보다 안 되는 핑계만 찾는 사람과의
관계가 삶에 보탬이 될 리 없다.

기가 빨릴 뿐이다.
만나고 나면 ‘왜 만났지?’
하는 후회만 남는다.

다섯째, 감정적으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도 잘라내야 한다.

“너 때문에 힘들어”라며
이유 없이 죄책감을
심으려 하거나,

지나친 집착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에너지를 고갈시켜
십중팔구
상처만 남기고 끝나게 마련이다.

가지치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정신적·정서적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
하게 한다.

중요한
관계에만 에너지를 쏟으면
정신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18년 미국 심리학회 APA는
“불필요하거나 부정적인 관계는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관계의 가지치기는
나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줄이고,

나의 성장에 보탬이 되는
사람과의 연계와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소모적 관계가 생산적인 관계로 바뀌게 한다.

그러니 내 인생이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흔들리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훌훌 털어내자.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_강웓국>

與鬱의 生生知音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농부는 수확을 앞두고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를 먼저 살핀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사람 관계에 대해
오래 품고 있던 생각 하나를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늘리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정리하는 일에는
유난히 서툴다는 사실.

사람과의 연결이 많을수록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고,
관계를 정리하는 선택은
차갑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망설여 왔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많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지하느라 애쓰는 마음이 많아질수록
나의 중심은 흐려졌습니다.

늘 내가 먼저 연락해야 이어지는 관계,
늘 내가 이해해야 무너지지 않는 인연,
만남이 끝난 뒤
위로보다 피로가 남는 시간들.

그것은 인연의 깊이라기보다
이미 관계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건네는 ‘가지치기’라는 말은
누군가를 밀어내라는 권유가 아니라,
관계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차분한 확인처럼 들립니다.

관계의 기준을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이 관계 안에서
내가 나답게 존재하고 있는가’로
옮겨 보라는 제안.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삶의 경계를 허물지 않아도 되고,
불편함을 견디며
착한 사람으로 남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관계를 덜어낸다고 해서
사람이 메말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겨진 관계에
더 풍성하고 따뜻한 마음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인연을 감당하려 애쓰지 않을 때,
비로소
중요한 사람을
제대로 대할 힘이 남습니다.

지금의 나는
관계를 증명하려는 시기를 지나
관계를 분별할 수 있는 단계로
조금 옮겨온 것 같습니다.

나를 소모시키는 연결은 줄이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인연에
마음을 쓰는 쪽으로.

그 선택은
차가움이 아니라
자기 존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글은 담담하게 알려줍니다.

오늘 나는
내 삶에 남겨둘 관계를 떠올리며
이 질문 앞에 섭니다.

지금의 나는,
이 관계 안에서
제대로 숨 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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