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_서은국교수

by 여울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_서은국교수

문화와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의 감정은

쾌 혹은 불쾌라는

두 갈래의 바구니 안에서 오갑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오늘날의 행복 연구자들까지

쾌와 불쾌의 상대적인 비율을

행복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를

일상에서 더 자주 경험하는 데 있습니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의 과녁을 자꾸 빗나가는 이유는

쾌락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겨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의 기원_서은국〉


與鬱의 生生知音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를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행복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성취와 완성 같은

커다란 목표의 끝에 올려두고

그 지점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

기뻐할 일 앞에서도 망설이고,

좋은 순간이 찾아와도

‘이 기분이 얼마나 갈까’를

생각하느라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은국교수님은

행복은 ‘쌓아 올린 총량’이 아니라

‘반복되는 빈도’에 더 가깝다고

말합니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웃을 수 있는 마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감각,

편안함을 알아차리는 시간.

그 빈도가 모여

삶의 온도를 조금씩 데워준다는 사실을

이 글은 소리내어 알려줍니다.


돌아보면

삶이 버거워지던 때는

큰 불행이 닥쳤을 때가 아니라,

기쁨이 드물어지고

마음이 메말라가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행복을 ‘성취’라는 과녁에 맞히려 애쓰지만,

정작

과녁 자체를 잘못 그려 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은

크게 성공한 날에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오늘 마신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던 순간,

햇빛이 등을 스치며

하루를 안아주던 시간,

누군가의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졌던

그 짧은 찰나 안에

이미 머물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쾌락을

경계하기보다

삶을 살리는 감각으로

조금 더 신뢰해 보려 합니다.


나를 다시 오늘로 불러들이는 기쁨을

의식적으로

자주 허락해 보려 합니다.


행복은

참아낸 끝에서

도착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에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몇 번이나 마음이 풀어졌는지에

이미 응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행복을 크게 바라기보다,

조금 더 자주 느끼는 쪽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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