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린저녁 Aug 04. 2017

냄새와 온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야


 여행지에서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고 부지런하게 셔터를 눌러봐야 찍어 온 사진을 다시 둘러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오히려 여행에 대한 기억을 단단하게 남겨 어느 때고 날 그때의 그 시간, 그 장소로 되돌아가게 해 주는 것은 주변을 맴돌던 냄새와 피부에 닿았던 그 날의 기온. 



 8월, 한 낮의 찌는 듯한 여름의 온도가 날 다시 태백의 구와우 마을로 데려간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삼십분 남짓 시내버스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던 외진 마을. 아무도 없는 땡볕의 아스팔트 위를 걷고 또 걸어 도착했던 해바라기 밭. 시기가 늦어 이미 바래버린 꽃들 사이로 드문드문 피어있던 지각생 해바라기들과 그늘막 하나 없는 언덕배기에서 한 줌의 바람에 기대 바라보던 초원의 짙음. 비닐천막 아래 조촐하게 지어진 간이식당에서 먹었던 파전과 맥주 한 병. 알콜의 기운으로 버텨냈던 버스정류장에서의 지루한 기다림...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고 금방이라도 걸어나갈 것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내 올해는 갈 수 없겠어. 지금은 가기 힘들지. 아마 내년에도 힘들지 않을까? 어쩌면 내후년에도...라는 생각에 마음이 알싸하게 아프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새벽에 눈이 떠졌다는 이유로 무작정 짐을 꾸리고 떠났던 그 때의 그 날로.


지금도 그 풍경 그대로일까? 

목마르게 넓었던 마을과 두런거림 하나 없던 고요함은.


그 냄새와 그 온도를 다시금 느낄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와 함께 그 풍경을 다시 보리라 다짐한다. 아이와 함께 보는 풍경은 혼자였을 때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겠지. 내 아이가 더위에 지쳐 집에 돌아가길 조르는 아이일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하고도 감당 안 될 만큼 사방 온 곳을 뛰어다니는 아이일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지금 내 상상 속 아이와의 여행은 땀이 찬 조그만 손을 꼭 쥐고 발목을 덮는 풀에 작은 발이 혹여 걸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언덕을 걸어올라가는 것. 마침내 도착한 언덕 위에서 아빠와 아이를 나란히 세워두고 깔깔 웃는 모습을 카메라 렌즈로, 눈으로 지켜보는 것.


 기분좋은 상상이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한 쪽을 콕콕 찔러대는 그런 상상. 


 그 냄새와 온도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야. 

대신 내 머리에,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그 순간이 자연스레 돌아오는 8월의 한 낮을 즐겁게 맞이해야지. 조만간 새로운 냄새와 온도가 생길 거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별 일 없던 날의 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