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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Sep 20. 2017

별 일처럼 살고있다


#1

 야심차게 뫼셔 온 탈란드시아 이오난사 하나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려서부터 무수히 많은 식물님들 뫼셔다 강을 건너보냈던 나였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쑥쑥 자란다는 선인장, 개운죽부터 물만 제 때 갈아주면 사철 푸르다는 다육이, 꽃기린, 행운목 등등까지. 그럼에도 꽃집 앞만 지나가면 왜 그렇게 마음이 선덕대는지... 길 가에 피어있는 풀떼기 한 줄기, 한 줄기에 가슴이 살랑이는건지...


 고등학교 때, 꽃집 언니에게 반해 단골 꽃집을 만들었던 이후로 몇 년간 계속되어온 죽임의 역사(?)에 한동안 선덕이고 살랑대는 마음 붙들어매고 꽃이든 풀떼기든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며 뫼셔오는 행위를 지양하고 살았다. 신혼집을 꾸리고 내 의지와 별개로 집 안에 들인 화분들에 대한 관리도 남편님께 이양. 내가 손대면 십중팔구 죽일 것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가끔 따스한 시선을 쏴주고 얼기 설기 엉긴 줄기를 풀어주거나 이파리를 걸레로 닦아주는 정도로만 관여했다.(그리고 그럼에도 서너분 강을 건너보냈다. 나미아미타불 아멘) 그런데 그놈의 보태니컬 인테리어 광풍에 왠갖 쇼핑 서비스 베스트 판매량 상위에 식물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광경을 목도하다 정신줄을 놓아버린게다. 나도 모르게 디시디아 세 개, 이오난사 세 개, 스투키 한 개를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 버튼을 크크크크크클릭! 


 몇 해 전, 동물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택배로 주고받았단 기사를 접하고 게거품 물었던 나였다. 그런데 같은 생명의 무게를 지닌 식물을 거래하는데는 이렇게 가벼운 마음을 품었던거다. 그리고 역시나, 집으로 뫼신 디시디아 세 분은 고된 택배 여정 탓인지 이파리 상당수가 짓이기고 잘린 채 와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멀쩡히 도착한 이오난사 한 분은 내 손으로 또 죽인 것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2

 혼자 있을 때는 대체로 집 안 불을 꺼 놓고 지낸다. 


 우리집에서 햇빛이란 아침에 잠깐 들러 고개만 까딱하고 금세 가버리는 존재라 안방이고 거실이고 가릴 것 없이 종일 어둑어둑한 환경이지만 살아오며 딱히 밝은 환경에 놓여본 적 없던 나는 겸사 겸사 전기료 아낀다는 핑계로 어둑함을 즐기며 지내왔다. 밤이라도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진 좀처럼 불을 켜는 일이 드물게 지내다 보니 언젠가부터 남편이 집 안을 이동할 때마다 켜지고 꺼지고 하는 불빛이 신경쓰여 불 좀 끄라고 잔소리를 거듭하는 아내가 되었다. 전기란 자고로 무언가를 켜고 끌 때, 열고 닫을 때 요금을 많이 물린다는 말을 끊임없이 주지하면서...


 이오난사 한 개가 강을 건너고서야 부랴부랴 돌보는 법을 검색했다. 데려올 때 봤던 상품 페이지에선 반양지에 두고 주 1회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기만 하면 잘 자란다 했었다. 무심한 나는 어둑어둑한 집 안에 식물들을 걸어두고 분무기질만 열심히 해대며 순진하게 잘 자라길 기대했다. 그러나 아뿔싸, 디시디아이건 이오난사이건 탈란드시아라고 불리우는 이 행잉 플랜트들은 가끔씩 햇빛을 담뿍 담뿍 받아야 생기가 돌고 과습한 환경을 좋아하지만 물기가 많으면 안되며(?) 물을 주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물에 푹 담궜다가 천 같은 곳에 올려 물기를 말린 후 걸어주는 식으로 줘야 한단다. 사실 인터넷에서 찾은 이 방법들엔 신뢰가 안간다. 검색결과마다 미묘하게 돌보는 방법이 갈려 과습하게 키우란 건지 건조하게 키우란 건지 헷갈리기도 하고. 어쨌든 확실한 건 이 분들이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분들이라는 것과 뫼셔온 주제에 쉽게 키우려 했던 내가 바보다...라는 것.


 물은 아이폰 캘린더 알람 기능에 기대어 어찌어찌 맞춰서 준다쳐도 사시사철 어둑어둑한 우리집에서 햇빛을 담뿍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리가...급한대로 식물들이 걸려있는 거실에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내가. 무려 내가! 집 안 불을 켜다니!! 우리집에서 베란다 한 구석이 그나마 밝은 곳인데 따뜻한 곳을 선호한다는 이 분들을 춥고 휑한 베란다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불을 켜고 지낸 지 이틀 째이다. 한 여름 에어컨을 틀며 벌벌 거렸던 심정이 거실 전기 스위치를 누르며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이깟 전기료 몇 푼 쯤이란 마음과 녹아버린 얼음 위 북극곰 얼굴이 머릿속을 교차로 지나간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식물들이냐 당장 눈 앞엔 없지만 실재하는 불행인 북극곰이냐...


 거실 불을 켜는 대신 다른 곳에서 전기를 아껴야겠단 일념으로 놀고 있는 콘센트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집 안을 두리번 거린다. 아아 이미 뽑아 놓을 것들은 다 뽑아 놨던 터라 뽑을 수 있는 콘센트가 별로 없다. 결국 거실 불 켜놓은 것이 아깝다며 편한 안방을 두고 부득불 거실에 붙어 앉아있기로 했다. 아낀다는 것과 청승맞다는 것은 한 몸이던가? 그 와중에 과습과 건조의 기준이 헷갈려 식물들 주변부에만 분무기질을 하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 


 참나, 별 일이 없으려니 별 일 아닌 것도 별 일처럼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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