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초록으로 물든 기억

언니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by 졸린저녁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시절, 우리집은 서울 변두리 면목동의 컴컴한 지하방과 낡은 산동네를 전전하며 살았다. 집안에서 쥐와 벌레가 흔하게 나왔고 마당에 자주 나오던 두꺼비와는 소꿉놀이 친구를 하며 함께 놀았던 그 시절.

주변 대부분 가난하여 내 가난이 선명하지 않아서였을까, 다행히 내 어린시절의 기억은 어두운 기억보단 밝은 기억이 더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가장 따뜻한 기억은 한 집에 잠시 살았던 옆집 언니에 대한 기억이다.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그 무렵 살았던 집은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두 가구과 주인집이 비교적 너른 마당을 두고 'ㄱ'자로 붙어살던 형태의 집이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아주 조금 더 넓은 단칸방이 우리가 세들어 살던 집.

화장실은 당연히 공용 화장실로 밖에 있었고 싱크대는 커녕 문도 없이 시멘트로 대충 발라진 바깥 부엌에서 씻는 것까지 해결해야 했던 산 아래 허름한 집.

채변 채취를 해야 하는 것을 잊고 있다 늦은 밤 부랴부랴 화장실을 가야 했을 때 바깥에 위치한 푸세식 화장실에 귀신이라도 나올까 싶어 바지를 내린 채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 아이 걸음으로도 걸어서 5분이면 오를 수 있던 동네 뒷 산 기슭에서 또래 아이들과 토끼를 쫒으며 놀았던 기억. 그리고 단발머리 곱게 빗은 옆집 언니.


언니는 몸이 불편해 종일 집에만 있었다. 언니 부모님이 제대로 계셨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항상 혼자 있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언니는. 학교를 마친 내가 쫄래 쫄래 마당으로 들어서면 항상 툇마루 기둥 옆에 기대 앉아 어눌한 말과 몸으로 어서오라며 환하게 웃어주곤 했다.


마주보고 앉은 사람의 나이를 가늠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그 때, 나는 그냥 짐작으로 언니 나이가 나보단 많으리라 하며 언니 언니하고 따랐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족히 열살은 차이나는 사이였지 싶다.


나를 반겨주는 언니가 좋아서, 환하게 웃는 언니 얼굴에 맞닿은 햇살이 좋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종종 가방을 방에다 팽개쳐 놓고 언니와 놀곤 했다.

손도 굽고 몸도 굽어 거동이 불편했던 언니와는 마당을 가르며 뛰어놀지도 못했고 나이차가 제법 나는지라 놀이 방법이 달랐을텐데도 어린 내가 언니를 졸졸졸 따랐던 건 둘 다 그림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그려내는 언니의 그림은 가지고 있는 색연필의 개수처럼 단순했지만 내 어린 눈에는 내가 그린 것 보다 솜씨가 월등하게 나아 보여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언니를 참 많이 부러워했던 것 같다.


때론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날때면 언니를 붙잡고 내가 갖고싶은 것들을 이것도 저것도 그려내라며 집요하게 조르곤 했는데 언니는 내 얕은 심보를 다 알아챘을텐데도 귀찮아 하는 기색없이 내가 말한 것들을 참 예쁘게도 그려주었다.


내 서투른 칭찬에도 언제나 수줍게 웃으며 날 위해 그림을 그려주었던 착한 언니.


그럼에도 나는 종종 아니 자주, 언니랑 노는 것이 지루해지면 모른채 슬쩍 언니만 혼자 두고 나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산으로 산으로 뛰어 다니며 놀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뛰어놀다 어스름해질 무렵 들어와도 언니는 항상 그 자리에 미동조차 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맡겨 놓은 것 마냥 매일 그림을 그려내라는 당돌한 부탁에도 흔쾌히 그림을 그려주었던 언니. 커다랗고 징그럽게 생긴 두꺼비를 데려다 내 아들이니 언니가 내 남편을 해내라며 소꿉놀이를 강요해도 웃으며 함께 해주었던 착하고 예쁜 언니.


언니는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두 팔 두 다리를 자유로이 쓰며 안이고 밖이고 쏘다니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밖으로 나가지 못 해 언니에겐 길기만 했을 하루를 어떻게 보내며 살았던 걸까. 이사 한 뒤로 한번도 찾아보지 않았던 나를 언제까지 기억해주었을까. 우리 집을 이어 받은 사람들 중 나같은 어린아이가 또 있었을까. 아직 그 집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건 아닐까...


이른 새벽. 문득 언니에 대한 노랑초록색 기억이 떠오르면 왠지 모를 아련한 감정이 솓구쳐 잠을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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