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했던 동네
서울 면목동,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에 살던 때의 일.
집 앞 골목길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한 무리의 친구들이 모여 길바닥에 엎어져 있는 소쿠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야? 뭔데?' '00이가 참새를 잡았어!!'
또래 친구 중 하나가 소쿠리에 실을 매달아 어찌어찌 휘둘러 참새를 잡은 모양인데, 엎어진 소쿠리를 뒤집었다 참새가 후다다닥 튀어나올까 선뜻 뒤집지 못하고 다들 옹기종기 모여 소쿠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무리 사이에 끼어 앉아 호기심 반 무서움 반으로 소쿠리와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누군가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던 그 때, 우리 곁으로 요쿠르트 아줌마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니? 왜들 이러고 있어?' '00이가 참새를 잡았어요!'
동시에 재잘되는 아이들을 보고 사람 좋게 웃으신 아주머니는 무릎을 굽힌 채 주저앉아 소쿠리를 사알짝 들어올린 후 소쿠리 안에 손을 넣어 참새를 꺼내 주셨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아주머니 손에 들린 참새를 한명씩 돌아가며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참새가 예쁘다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기도 하고 한번 잡아보면 안되냐고 용기있는 아이들이 나서 참새를 손에 들어보고 난 후에야 그 날의 이벤트는 끝.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고생이 퍽 많았던 참새를 날려보내 주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동네 아이들 모두에게 그렇게 다정하고 다감하신 분이었다.
요쿠르트를 배달 해 먹는 집의 아이들은 물론 그 아이들의 친구들까지, 건내는 인사는 물론 먼저 건내주시는 인사까지. 아이들을 대하는 얼굴에 미소가 떠나는 날을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다감하신 분.
나 역시 요쿠르트 아주머니를 참 따랐었다. 맞벌이 나간 부모님으로 인해 항상 비어있던 집. 동생을 돌봐야 해서 멀리 나가 놀지도 못했던 나는 집 앞 골목, 두세 블럭 남짓한 곳을 맴돌며 놀곤 했고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골목을 지날 때면 배달해주신 요구르트를 받아들고 조잘조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떠들곤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낮 동안 집에 없는 엄마 대신이었다. 말로만이 아니라 날 정말 그렇게 돌봐주셨다.
한 겨울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에 온 날이었다. 어떤 연유였는지 수중에 열쇠가 없었던터라 추운 겨울 바람이 쌩쌩 들이치는 계단에 앉아 꼼짝없이 누군가 오길 기다려야 했다. 얌전하게 기다렸어야 했는데...추워서 심통이 났던 걸까? 집에 아무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울컥해서였을까? 기다리는 동안 양철로 된 문을 쾅쾅 발로 걷어차던 나는 그걸론 모자랐는지 양철 문 위 유리창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그리고 아뿔싸. 겨울 바람에 꽝꽝 얼어있던 유리창은 내 고사리 만한 주먹에도 맥없이 깨져버렸다.
「와장장장창창창!!!'」
비현실적이었던 그 날의 광경, 한 낮에도 어둑어둑한 지하. 어린아이의 주먹에 깨진 유리창과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 보이는 평화로운 집안 풍경. 그리고 팔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피. 유리창이 깨질 때 시간도 같이 멈춰버린 것처럼 난 주먹을 내지른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대체 유리창이 왜 깨진거지? 이게 다 무슨일이지?'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문득 계단이 소란스러워 올려보니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문 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주머니가 오시는 시간 늘상 문 앞에 나가 요구르트를 받아들던 내가 없던 것이 궁금해 삐죽 열린 문 사이로 지하를 내려보며 내 이름을 몇 차례 부르시던 참이었다. 사태를 파악하신 아주머니가 재빨리 내려오셨고 깨진 유리창 사이로 손을 넣어 잠금쇠를 돌려 문을 열어주셨다. 그 와중에도 멍하니 있던 나는 아주머니가 집 안으로 잡아 끄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 달라고 울먹였던 것 같다.
내 말에 혀를 끌끌 차신 아주머니는 집 안을 뒤져 약이며 반창고며 이것저것 찾아내어 내 팔에 붙여주시고 이리저리 흩어진 유리 잔해를 끌어모아 치운 후 깨진 문에 바람이라도 들어올까 신문지까지 붙여주셨다. 그리곤 침착한 어투로 날 달래시곤 엄마가 올 때까지 같이 있어주셨다.
아주머니도 일을 하셔야 했을텐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배달하셔야 했던 일. 가장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는 시간. 그럼에도 어린 나를 혼자 두지 못해 긴 시간 함께 해주신 아주머니.
해가 꼴딱 넘어가는 시간 즈음 엄마가 도착했다. 다친 것 보다 깨진 유리창 때문에 혼날 것이 무서웠던 나를 대신해 아이가 실수로 유리창을 깬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다쳐서 놀랐으니 혼내지는 마시라 엄마에게 당부해주던 아주머니. 그 순간만큼은 엄마보다 더 따뜻했던 아주머니의 등.
아주머니 덕분에 그 날의 일은 평화롭게 해결되었고 깨진 유리창도 다친 팔도 금세 아물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주머니에 대한 내 마음은 더 애틋해져 요구르트 리어카 끄트머리만 보여도 우당탕 쿵쾅 내달려가 아주머니를 찾곤 했다.
얼마 전, 떠나온 지 십여년 만에 그 동네를 들른 적이 있었다. '저기가 내가 중학교 때 살던 집이야. 이런, 내가 자주 가던 슈퍼가 없어졌네' 들뜬 마음에 함께 간 남편에게 온 동네를 전부 설명할 기세로 종알종알 떠들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들뜨게 한 건 혹시라도 어쩌면 그 골목에서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다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났지만 변치않고 그대로인 골목처럼 아주머니도 그 곳에서 그대로 계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아직 그 곳에 계신다면, 아니 지금 어느 곳에 계시더라도. 아주머니는 변하지 않으셨을거야. 여전히 다정하고 여전히 다감하시겠지. 언젠가 혹시 마주치면 그때처럼 환하게 웃어주시려나?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이고 슬쩍 입가에 미소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