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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Feb 18. 2018

[영화 보기] 블랙 팬서

스포 만땅 리뷰

난 마블 덕후다. 정확하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덕후. 개봉한 영화는 빠짐없이 보고 또 보고 '또' 봤고. 넷플릭스에서 런칭한 마블 캐릭터 드라마들도 한번씩은 전부 건드려(?) 본 정도.


심지어 작년에 개봉한 토르:라그나로크는 출산하고 한 달 밖에 안 된 신생아를 떼 놓고 다녀오기도...


이번 블랙팬서 개봉을 앞두고도 언제 극장에 갈 수 있는지 여부를 계속 조율하고 하나씩 공개되는 영화 관련 클립에 빠짐없이 좋아요를 누르며 기대한 끝에 설 연휴를 기회로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내 취미생활에 협조해 준 남편님 생유베리감사).


블랙팬서를 기다리며 내가 기대한 것은 딱 세 가지. 힙합 비트에 버무려진 액션, 인피니티 워와 연결되는 쿠키 영상의 유무, 그리고 '백인 남성', '미국 국적'의 공식을 깬 영웅 서사의 탄생.


DC의 원더우먼에 이어 마블의 캡틴 마블과 폭스의 키티 프라이드 영화화 결정으로 예정되어 있는 여성 히어로 영화가 조금씩 늘어가는 중에 유색 인종 히어로까지 탄생하며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배제되어 왔다는 의미로)소수'의 목소리가 힘이 실리는 상황이 반겨졌기 때문. 물론 헐리웃 영화에서 황인종은 여전히 고정관념의 테두리 밖에서 접하기 힘든 상황이고 개봉 영화 중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서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도 쉽게 바뀌지 않아 넘어가야 할 산이 빽빽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과학기술이 발달한 아프리카 국가의 영웅'이라니...설정이 너무 섹시하잖아!


영화를 보면서 마블도 흑인 영웅의 탄생이라는 상징성을 영화 전체에 담아내려 애썼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아래로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


비브라늄으로 인한 부강함과 진보한 과학기술을 가지고도 국가의 비밀(비브라늄 보유량과 과학기술)이 새어나가면 자신들의 안위가 깨어질까봐 주변의 극빈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서구세계에서 이어진 흑인 차별의 역사마저 외면한 채 대외적으로 최빈국 행세를 해 온 와칸다. 급기야 1992년 와칸다의 왕 티차카는 미국에서 급진주의적 방식으로 흑인들을 도우려 비브라늄 무기를 몰래 유통한 친동생 엔조부를 죽인 후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도록 동생을 죽인 사실을 감추고 엔조부의 어린 아들인 에릭마저 미국에 버려두고 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에릭은 복수의 칼날을 품고 살인 훈련을 거듭하여 킬 몽거라는 별칭을 얻고 티차카의 죽음 이후 와칸다의 새로운 왕이 된 티찰라의 왕위에 도전하기 위해 와칸다로 향하는데...


차라리 와칸다의 비밀을 지키려는 이유가 (조금 진부하더라도) 먼 과거에 비브라늄 때문에 외부 세력에 지속적으로 침범을 당해왔던 이력이 있거나 비브라늄으로 도왔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아 숨기게 되었다거나 했다면 덜 이기적으로 보였을텐데...

그저 자신들의 안위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선(善)역으로의 명분이 떨어져 덩달아 블랙팬서인 티찰라의 매력도 반감되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킬 몽거의 배경 스토리가 더 와닿을 정도(그 어린 것이 미국 그것도 추정으로 할렘가에 혼자 남겨져 얼매나 고생을 했을꼬 훌쩍)


매력적인 빌런이 없는 것도 문제. 그나마 율리시스 클로가 조커같은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킬 몽거의 이야기 진행을 위해 초반에 버로우하고...정작 킬 몽거는 매력적이기 보단 애잔하기만...티찰라에 반기를 든 부족의 족장인 음차카는 알고보니 개그캐였고...와카비는 매력은 커녕 줏대도 존재감도 없어ㅠㅠ


제작진도 인종차별 문제를 외면해 온 와칸다라는 설정이 마음에 걸렸던 지, 티찰라가 존경하던 아버지 티차카에게 대드는 씬을 넣었다거나 흑인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농구골대 대신 폐박스를 걸어두고 농구를 하는 것 정도로 소극적으로 그려내는 등 대사 외 이미지로의 노출을 자제한 듯 한데 그러기엔 현실세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차별의 모습들을 우린 너무 잘 알고...


킬 몽거나 킬 몽거의 아버지인 엔조부를 말콤 X와 같은 급진주의자로 설정한 것 같은데 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묘사가 고작 율리시스 클로한테 비브라늄 정보를 알렸다거나 살인한 숫자를 몸에 빽빽하게 새겼다라는 설명 정도로 간단하게 넘어간 반면 마틴 루터 킹과 같은 평화주의자로 설정된 블랙팬서는 왕 혹은 힘을 가진 영웅으로써의 역할이나 책임에 대한 고민보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이리 출렁 저리 출렁하는 모습만 보여 킬 몽거의 급진주의적 사싱과의 대비조차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차라리 빌런은 율리시스 클로 정도만 등장시키고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은 다른 방식으로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영화.


그래, 뭐. 캡틴 아메리카도 시리즈 첫 편은 매우 아쉬웠지만 결국 시빌 워로 흥했었으니 블랙팬서도 이번엔 진정한 왕이 되는 과정 정도였다 이해하고 다음편을 기대해야지...훌쩍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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