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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n 03. 2018

한 낮의 우울

이런 게 산후우울증인건가

열이 바짝 올라 종일 두 볼을 붉힌 채 정신나간 사람마냥 걸레질을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엄마아아, 나 너무 더워. 올해는 정말 더위가 금방 온 것 같아'

'네가 움직여서 더운거야. 엄마는 하나도 안 덥다.'

'으응 그런가? 아아 너무 더워. 더워서 막 어지러워'

'가슴에 화가 많아서 그래. 화가 쌓여서 더운거야'


그래, 맞아. 화가 가슴에 칸칸이 쌓여있다. 바락바락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힘껏 내리 누르면서. PMS 때문일거야. 날이 더워서 그렇지. 바깥 바람을 좀 쐬면 괜찮아 질거야 등등의 자기위안을 거듭하는 중. 


때론 유모차를 밀고 무작정 밖으로 밖으로 나간다. 

누구인지 모를 길 안의 사람들에게 내가 얼이 빠져 있단 걸 감출 요량으로 '밖에 나오니 좋지?', '엄마랑 마트 가자아아'라며 아이에게 열심히 말을 붙이는 척 하지만 시선은 황망하게 길 밖을 맴돈다. 


그래, 이게 바로 산후우울증인가보다. 

대상없는 분노가 쌓여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하루를 내내 붙어있는 아기 정서에 혹시 해가 될까 어디에도 티를 내지 못하고...어쩌다 눈물이라도 한 방울 새어나오면 스스로 흠칫 놀라 아기 눈치를 살피곤 몰래 훔쳐내는...그런 나날의 반복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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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생각보다 좋아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난 그냥 '그래요? 아닌데~하하' 하며 웃고는 좋지 좋아. 난 다른 (힘든)사람들보다야 상황이 훨씬 나으니 고생이라고 할 순 없지. 좋지 좋아. 등등의 생각을 거듭하며 마음을 다 잡으려 한다. 


억지로 지어낸 낙관은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비관을 불러 일으킨다. 


친정엄마가 매일 와서 도와주시는데 뭐가 힘들어? 주말마다 남편이 하루씩 아이를 봐준다며, 좋겠다. 아이가 순하네~돌보기 쉽겠어. 밥 잘먹는 아이라 좋으시겠어요? 안 먹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든데~먹이느라 고생은 않겠네. 


그래, 다들 괜찮다 좋겠다 하는데. 내가 봐도 내 상황이 주변 상황보다 그나마 나은데. 근데, 난 왜 힘들지?


나약해서 감성적이어서 정신력이 부족해서 배가 불러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멘탈이 약해서

그래, 내가 그렇지 뭐. 그러니 어디에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어. 


그렇게 억지로 지어내서 웃고 신나는 노래로 기분을 감추고 눈물에 젖은 베갯잇을 뒤집어 놓고 정신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정처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다시 또 속 없는 것마냥 웃고 흘러나온 콧물을 소매로 슬쩍 닦아내고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되묻고는 정말 몰랐다는 듯 헤헤 웃으면서...




아아 빨리 지나가버리면 좋겠다.

감기처럼 화르륵 앓고 떨어지는 병이면 차라리 낫겠다. 


아아 제발 없어져버렸음 좋겠다. 

내 마음이든 나 자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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