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계륵같은 너
임신 11주차에 보건소를 방문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빠진 정보의 바다에서 보건소에 가면 혜택이 있는데 지자체 마다 다르니 자세히 확인하고 방문을 하란다.
만사가 귀찮은 나는 11주까지 미루고 미루다 보건소에 가면 기형아 검사 쿠폰을 제공해준다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도착하여 모자보건실이라는 곳을 방문하니 토끼같은 눈을 한 직원 셋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상황 설명을 기대하며 갔는데 도리어 상황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져 '임산부인데요'라는 말에 말줄임표(...)를 섞어 건냈다.
'임산부 맞으세요?'라며 내 배를 한번 훑어 본 직원 한 분이 급 상황을 알아챘다는 듯 웃으며 '아! 임산부 등록하러 오셨어요?'라고 묻길래 그 웃음에 보답하듯 마주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임산부 등록을 따로 해야 돼? 귀찮네... 머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섬주섬 산모 수첩이니 임신확인서이니 신분증이니 하는 것들을 꺼내어 직원의 책상 위에 늘어놓으니 내가 늘어놓은 물건의 개수만큼 똑같이 내어 놓아야 하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임산부 안내 책자이니 엽산이니 임산부 배지이니 하는 것을 하나씩 꺼내어 내 앞에 진열한다.
늘어놓은 물건의 완벽한 대칭 구조 속에 상대편이 늘어놓은 물건들을 잽싸게 집어 진품?여부를 확인한 후 이 어색한 물물교환이 끝이 났다. 늘어 놓기는 서로 늘어 놓았는데 난 내가 늘어 놓은 물건을 전부 다시 수거하고 직원이 늘어 놓은 물건까지 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런데 잠깐,
임산부 배지라니...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수많은 눈엣가시 중에 하나는 노약자석이었다. 노약자석이 있기 전까진 노약자가 들어서면 어느 자리에 앉았든 양보하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모른척 양보를 안했더니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 놓더라 혹은 지팡이를 팽팽 휘두르며 호통을 치더라 등등의 에피소드는 있었으나 그럼에도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 한다는 것이 공동체 사회의 배려라는 함의가 모두에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결코 동의한 적이 없는 노약자석이라는 구분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노약자석은 곧 노인석이 되며 불통하는 노년 세대와 이기적인 젊은 세대의 세대 간 갈등을 상징하는 좌석이 되어버렸다.
젊은 세대인 나는 출퇴근 만차일 때도 비어있는 노약자석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리 부러진 사람, 임신해서 배불뚝이인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상황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꽉 차 버린 노약자석을 목격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비노약자석을 기웃거리다 칸을 옮기는 상황도 이해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양보가 배려가 되지 않았다. 해주면 감지덕지 한 것이고 안 해주면 배은망덕한 것이 되어버린 불쌍한 양보...
양보하지 않는 일부 시민이 문제였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들을 계도하면 되지 않았을까...양보를 강요하는 일부 노인들이 문제였다면 양보가 필수 아닌 배려라는 것를 그들에게 교육하면 되지 않았을까...쓰잘데기 없는 일에는 연간 캠페인이니 연중 행사니 뭐니 하며 돈을 퍼붓는 정부에서 노약자석이라는 심플하고 멍청한 정책을 내 놓은 것은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산부 좌석이 생겼다.
핑크색이라는 성차별적인 도색도 배꼽 빠지게 '비'웃을 일인데 등짝이니 바닥이니 '양보를 강요'하는 문구들까지 함께 도배되니 내가 임산부라도 저 자린 앉기 싫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이제 세대 갈등을 넘어 임산부 대 비임산부(?) 간에 갈등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그 걱정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안 건 내가 임산부 그 당사자가 되고 나서였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주변에선 초기 임산부이니 몸 조심을 하라는 염려들을 늘어놓았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자리가 생기면 염치 불구하고 엉덩이부터 들이밀어 꼭 앉아가라는 조언이 빠지지 않았다. 아빠는 지하철에 임산부 좌석이 생겨 다행이라며 임산부 좌석이든 노약자석이든 눈치 보지 말고 앉아가라고 혹여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들 해코지 하는 '노친네'들을 만나면 버럭 화를 내라며 '경찰'에서 퇴임하신 아빠 친구분이 노친네를 깔끔하게 물리친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임산부 좌석에 앉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선 임산부 전용 좌석은 '질싸 인증석'이라는 조롱이 난무했다. 더불어 배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자리를 양보 하냐는 말부터 좌석이 구분된 이후 자리가 비어도 눈치 보여 앉지 못하겠다는 온건한 항의까지 불만이 가득했다. 나 역시 눈치가 보여 앉을 수 없었다. 열에 하나라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조롱하는 사람'과 임산부라는 표시 없이 앉았을 때 앞과 옆에서 보여지는 '저 여잔 뭔데 임산부 좌석에 앉는건가'라는 호기심 혹은 비난하는 시선이 신경쓰여 차라리 서서 탔고 가끔 임산부 좌석이 아닌 자리가 나면 다행이라며 앉아 탈 수 있을 뿐...
임산부 배지를 받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임신하기 전에는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이나 임산부 좌석이 존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임신한 티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가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이 임산부 배지라는 것을 알게 되니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 두 번은 임산부 배지를 받을 수 있다는 지하철 역사에 내가 임산부임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서류를 들고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인력감축으로 직원 구경조차 어려운 지하철 역사 내 상황 탓에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눈길을 끄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임산부 배지를 증명서류 없이 '아무나' '손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는 기사였다. 댓글 창은 와글와글 난리가 났다. '질싸 인증석'이라며 킬킬 대던 몇몇 사이트에서는 나도 받아서 혜택을 받아야겠다라는 글과 욕설이 난무했다고 들었다.
배지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무나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거짓이라는 내용의 팩트 체크 형태의 후속기사를 접했으나 페북 내에서만 소리 없는 아우성 처럼 퍼졌을 뿐. 인터넷 상의 조롱은 여전해 보였다.
그런 의견이 많지 않으니 무시하라고, 일부 또라이들이나 그러지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은 미안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일부가 내 주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렇게 포기했던 배지를 보건소에 가서 의도치 않게 받아왔다. 포장도 풀지 않고 옷장 한 켠에 쳐박아 뒀다가 어지럼증과 두통이 심해 버스에서 왈칵 눈물이 났던 어느 날 가방 구석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놨다.
아직은 꺼내어 달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양보를 강요하는 폭력적 정책의 하나이다 하는 지론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도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배가 불룩 나와 누가봐도 임산부구나 할 때까진 고민할 것이다.
이 배지를 달아야 할 지 말아야 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