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앉아줘. 나 '대신'….

[에세이]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난 웃을 수 있을지 몰라….

by 김학필

정책은 신설된다. 그 정책이라는 것들은

특정 업계에게 찬란한 호황기를 안겨주기도 하고,

또 어떤 업계에게는

재기불능의 몰락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호황이나 몰락은

여간해서는 ‘자의로 택한’ 것이기 어렵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가 뽑는다고 그 정권이 들어서는 것도 아니며,


막상 그를 보고 뽑아서

그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봤자

그 정권이 기조를 바꾸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알다시피 정책이란 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기는 하다.

‘영원히’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지만,


분명 평가받고 평가받은 뒤에

재편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훨씬 많다.

다만 그것은

원성, 또 비토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인 뒤의 일.

또 실재하는 부작용이나 피해가

쌓이고 쌓인 뒤의 일.

또 어쩌면 그들의 벗어 던져버린 옷들이

쌓이고 쌓인 뒤의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러니만큼’ 최소한 정책의 변화로 인해

몰락을 앓게 된 이들을

‘무고한 피해자’라고 불러봐도 될까?


물론 혹자는 이를

‘풍파에 견디지 못한 나약함’,

또 ‘시류에 편승하거나 시류가 달라졌을 때

빠르게 전환하지 못한 무능함’ 정도를 들먹이며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려 하고,

또 영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불러봐도 될까?


또 한발 더 나아가서…

소속이나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었던 덕분에,

그 풍파를

직격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자

그 정책이 재편되거나 폐기되는 데에

크게 일조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흩뿌려주고, 쌓아준 이들을

‘무고한 희생자’라고

불러보는 것까지도 가능할까?


만약 그것까지도 가능하다면,

필자는 감히 이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다.


필자가 상병쯤 되었을 때,

부대에서는 해괴망측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군단장이 ‘6주 훈련’이라는 훈련을

신설해냈다는 소문.


그것은 분명 소문이었다.

아니 우리는

그를 소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군단장이 막 나가는 사람이라는 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6주간의 숙영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또 그 소문의 발원지가

평소에도 호들갑을 떨어대던

중대장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모든 정황상의 근거들은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오늘과 내일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 소문이 한낱 소문이라는 것의

근거가 되어줌과 동시에

그를 소문이라 증명하기까지 해줬다.


그랬던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또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소문 자체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사단의 공병대가

6주 훈련이라는 새로운 훈련의

첫 타자로 출정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세상은 그에 미약하게라도 놀란 듯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분명 그것을

뜬소문 중의 뜬소문이라 취급하고

지워버렸었지만,

그를 아예 몰랐던 것은 아녔으니까.

그랬던 만큼 우리는

“그게 진짜였네.”… 하며

그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소식마저도 잊혀갈 때쯤…

뉴스에서는

그 훈련을 나간 용사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는 소식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우리네들의 입에

올랐던 적 없었던 이야기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그리 놀랍거나

충격적인 이야기는 또 아니었긴 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또 “그럴 만하지.” 정도만 뱉어내고

치울 수 있었던 소식….


그런 한 줄짜리 감상이 생활관에 떠돌다가

증발하고 한참 뒤의 어느 날….

의전 부대였던 우리의 ‘일정표’에는

낯선 이름의 행사가 하나 들어섰다.


그것은 바로 ‘공병대대 훈련 복귀식’.

우리는 그렇게 뉴스에 올랐던 그들이자…

우리나 다름없었던 우리들,

또 우리여도 안될 게 없었던

그들을 맞기 위해 공병대대로 향했다.


훈련 복귀식.

행군을 통한 복귀로 마무리되는 훈련.

그러니만큼

군장을 메고 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조금도 낯선 일이 아니었지만,


그날의 그 행사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완전 처음 진행하는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피부병 환자들,

또 뉴스에 나온 일종의 ‘피해자’들을

맞아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들의 행색은 명확했다.

초췌하고, 초췌하고, 또 피골상접했다.

고생 많았을 것이라는 인도적인 감정보다….

그들이 딱하고 안됐다…는 연민,

또 어쩌면 비인도적인 감정이

먼저 피어오르던 행색들이었다.


행사를 끝마친 뒤

생활관에는 그들 앞에서는 꺼내선 안 될,

무례하고 어설픈 동정들이 오갔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정말 잠깐이었다.

중대장의 입을 통해 다른 기보대대가

‘추가’ 출정을 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 동정 어린 대화를 죄다…

“이러다 우리도 가는 거 아니가?”

변환되었기 때문….


그 누구도 답해줄 수 없었고,

답해줄 수 있을 리 없었던 물음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녔었던 물음들.


하지만 그 누구도

답을 이어 붙이고 싶지 않아 했었던 물음들.


덕분에 그 물음들은

그 어떠한 답변도 이어 붙이지 못한 채

생활관에 처연하게도 피어오르고,

또 흩뿌려지고 증발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숫자만 바뀐 듯한 다른 기보대의

추가 출정 소식은 계속 전해졌고,

우리의 일정표에는

마찬가지로 숫자만 바뀐 다른 기보대들의

훈련 복귀식들이 들어섰다.


그렇게 우리가….

아니 어쩌면 ‘덕분에’

평소에는 궁금해하지도 않아 했었던

사단 내의 기보대 숫자,

또 다른 대대들을 찾아가며

비정한 소거를 시작했던 때쯤….


세상에는 서서히 6주 훈련의 참상과 실태,

또 그 군단장의 악행에 대한 뉴스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훈련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실재하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그들의 상처가 담긴 사진들은

실재하는 증거가 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의 목소리는

피해 가족의 목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들은 분노하고, 또 분투했다.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또 쌓여가고,

또 그러는 와중에도

그에 목소리를 덧대어줄 수 있을

또 다른 기보대의 출정이

거행될 뻔했던 어느 날….


모종의 사정으로

6주 훈련이 잠정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에게는

상처뿐인 승리의 승전보…와도 같았을 소식이….


또 우리에게는….

우리의 면제를 선언해주던 소식이 말이다.

건네받음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던 소식이… 말이다.


물론 그렇다.

사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군단장이 정말 동요한 여론을 의식해서

그를 그만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러한 이유로

그런 결단을 내렸던 것이었더라면….


어쩌면 그날의 일들을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맞아줬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병대라는 이유로,

기보대라는 이유로,

또 포병대라는 이유로….


더해 의전 부대들보다

순서가 먼저 왔다는 이유로….


채워져야 여론을 동요시킬 수 있을

피해자의 자리에

우리 대신 앉아줬던 것…이라고도 말이다.


그 결과가

어쩌면….

우리에게 면제라는

‘수혜’가 되어 안긴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안 해보기는 어려웠다, 분명히….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는

시대의 발전이

풍요로운 오늘을 만들어줬다는 것에는

쉬이 동의한다.


또 625전쟁, 민주화 운동 등의

큰 역사적 사건이

오늘의 평화를 만들어줬다는 것에도

쉬이 동의한다.


아니 그를 넘어

그를 의심의 여지 없는 ‘참’이라 받아들이고,

말해 뭣하나 싶을 만큼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평화로운 오늘에

이름 모를 누군가의 희생이

‘조금이라도’

개입되어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물론 정말 희생은 없을 수도 있다.

안온한 오늘은

정말 순수하게 우리의 힘만으로

만들어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누군가가 희생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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