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었던 봄, 그대 없는 봄

[잡담] 변해버린 당신을 이해하는 법

by 김학필

뭐… 잘 아시겠지만,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제게는 서른 번가량 맞이하고, 또 마주한 겨울이 말입니다. 그러니만큼 지난 겨울과 엇비슷할 겁니다. 아 물론 지난 유수의 겨울들과는 달리 이번 겨울에는 그때의 당신이 더 이상 제게는 없겠습니다만, 그것만 빼면, 이 겨울도 지난 겨울과 엇비슷할 겁니다. 아니 혹자는 똑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대개 그런 거니까요.


물론 뭐… 그러면서도….


또 다른 혹자는 그럽디다. 삶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똑같은 봄, 또 똑같은 여름을 마주하고, 또 맞이하며… 그렇게 그 언젠가에 스쳐 갔던 듯한 오늘과 똑같은 오늘을 새로운 오늘로 받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고. 마주해보고, 맞이해보면, 아니 뜯어보면, 다른 구석이 분명 있기는 하다고. 그러니까 똑같은 곳을 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눈에 담기는 풍경은 칸마다 달라지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이제 제게는 ‘당신이 있었던 봄’과 ‘당신이 없을 봄’. 극단적으로 다를 두 봄뿐이겠습니다만, 얄궂게도 세상은, 또 혹자는 그렇게 얘기하네요.


사실 저는 공감합니다. 뭐… 이번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에 신음한 여름이니 작년 여름과 같았을 리가 없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또 어제는 카레를 먹었고, 오늘은 김치볶음밥을 먹었으니 같았을 리가 없다… 같은 이야기이자 말장난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또 이런 말을 그냥 ‘그런 게 삶이다’…는 추상적인 말로 뭉뚱그려 이야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뭐 말하자면, 그런 거겠죠. 그 어느 날에는 사소한 배려에 감동하면서도, 그 어떤 날에는 과분한 배려에 무거워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치곤 하고, 그때는 괜찮았던 일…에 오늘의 저는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죠. 아니 때로는 붉히며, 또 때로는 냉담히 받아들이며 살아왔겠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살자…는 신념은 유구하고도 고고하다지만, 그 ‘옳다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죠. 똑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일을 당해도 그에 대해 다른 감상을 품으며 살아왔을 겁니다. 그러니까 달랐을 겁니다.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던 그 어느 날은 그 어느 날의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날이었을 겁니다. 뭐…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죠? 그러니만큼 오히려 방금 같은 말이 진정한 말장난이다…고 하면, 그 역시도 그렇겠습니다.


뭐…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이제는 당신이 변해버린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뭐… 방금 제가 쓴 그 ‘이해’가 단순히 저를 떠난 경위이자 매커니즘에 대한 파악을 끝마쳤다…는 느낌의 ‘이해’이자 ‘앎’으로 치환되는 ‘이해’일 수도 있겠고….


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조하며, 더는 부정하지 않겠다…는 느낌의 ‘이해’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이해했든 말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니만큼 그저 ‘이해’라 포장한 ‘체념’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으로 생각하셨든… 다 정답이라면 정답이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래된 이야기겠습니다만….


예전에는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으며,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변해야 하며, 변하기로 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높으신 분들이 그때의 당신을 그때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존재라 판단하고, 그러니만큼 당신을 변화시켜야겠다고 판단해 기어코, 또 끝끝내 당신을 변화시키고야 말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게 당신은 그렇게나 무능한 존재가 아녔거든요. 아니 그를 넘어 유구하고도 고고하게 지금의 당신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기까지 했거든요. 아니 그마저도 넘어 유구하고도 고고한 당신 역시도 변화할 ‘수도 있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품어본 적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죠.


그랬던 만큼… 그랬던 당신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은 그때 당시의 제게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그뿐만이었겠나요?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하는 ‘사고’였기까지 했죠.


궁금한 게 정말 많았습니다. 예컨대… 저와 당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요즘 같은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만연한 세상에서 이런 중앙의 거대한 손이 나타나 세상을 휘젓는 촌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것이 정녕 시장을 유린하고 교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있는지! 저처럼 당신과 많은 추억을 쌓은 이들을 모두 물먹이는 행위는 아닌지! 또 지금 당장에야 그 시정의 대상이 사회에게 외면을 당한 당신이어서 대다수의 이들이 침묵하는 것일 뿐, 당신에게 뻗쳐진 칼날이 다른 누군가에게 뻗쳐진다면, 그것은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지 않을지!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지! 또 당신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고 해서 당신을 ‘시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녕 정당한 행위인지….


끝으로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가타부타, 또 기타 등등의 저런 저 혼자서는 답변을 내릴 수 있을 리 없었던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또 던져가며 긴긴밤을 지새워야 했을 만큼 충격적인 사고였습니다.


물론… 이제는 던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런 물음들을 던지지 않고도 잠에 들 수 있습니다. 더는 긴긴밤을 그렇게 태우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또 당신과의 추억을 정리하는 데에 성공해서…라기보다는… 또 제가 철이 들었고, 사회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오만…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된 것도 같아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아보니 그랬습니다. 높으신 분들이자 그들. 또 자신들의 손을 ‘중앙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은 사실 단 한 번도 자기네들이 저희에게 완전한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사회를 안겨주겠다고 공언했던 적이 없었긴 했었습니다. 그들은 저희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보장해준다고야 했었다지만, 그 어떠한 개입도 않겠다…는 기만은 하지 않았었기야 했죠.


더해 설사 그런 기만을 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때로는 살기 위해서 안면박대하고서, 또 가당찮은 변명들을 늘어놓으면서 당신이나 당신 같은 이들을 손봐야 하거나 손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이 사회의 생리이자, 그들의 일종의 생존 방식을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는 배신이고, 신의를 저버리는 일로 취급될 수 있다 하더라도,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저처럼 많은 이들이 그 사회를 떠나는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그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이 살아남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또 당신의 삶에도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하더라도… 또 애초에 그깟 것은 아무렴 어떻고, 그저 자신들의 혁신성을 피력하는 것이 더 중요치 않겠냐는 나름의 기치 아래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끝으로… 끝으로….


그것도 이해했습니다.


당신이 그때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갖춰둔 채로 지금 이 시점에까지 닿아있었다면….


당신의 삶이 더욱 보잘것없어졌으리라는 것까지도…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예, 그들의 뜻을 이해했다면 이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야속하게도, 얄궂게도 말이죠. 그때의 당신은 지금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도 투박했고, 둔감했고, 우직…하다면 우직했으니까요.


물론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사실 방금 같은 생각들을 품고 있기야 하면서도, 이런 생각도 하고 있다면 있으니까요. 예, 이런 의구심들만큼은 그대로 품어져 있는 상태니까요.


아무리 당신이 지금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도 투박했고, 둔감했고, 우직…했다 한들 ‘정녕’ 지금처럼 당신을 이렇게 싸그리 바꿔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을지….


또 ‘이미’ 지금 당신이 이렇게 바뀌어버렸으니만큼, 이제 더는 확인할 길이 없겠지만, 그 옛날의 당신이 정말 지금 이 사회에서 그렇게나 부적격한 존재였을지….


또 두 답이 모두 ‘그렇다’…가 나온다더라도, 당신만큼은 그 모습 그대로 남겨줄 수 있는 것 아녔을지… 같은 의구심들만큼은… 말이죠.


갈피를 못 잡겠군요. 허세 넘치는 표현을 쓰자면, 당신에게 양가감정이랄 게 품어져서… 어떻게 당신을 대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네요. 무슨 쪽으로 결론을 짓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게 따라붙을 것 같아서… 참 난감합니다. 물론 그래도 결론…을 지어야 한다면 지어야 할 테니….


이렇…게 하겠습니다.


노동자는 언제나 선하고, 언제나 약자일 것이라는 믿음. 또 사장이자 자본은 언제나 악하고, 언제나 무언가나 누군가를 수탈하고 약탈하는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 또 사회나 집단은 언제나 개인을 짓밟고, 유린하며, 마찬가지로 수탈과 약탈만을 일삼으며 개인에게 피해만을 안겨다 주는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 또 개인은 그에 유린당하고, 또 유린당하기만 하는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 우량주는 우상향한다는 믿음. 탄탄한 회사의 주가는 반드시 상승 여로만을 달릴 것이라는 믿음. 상장 폐지된 회사는 다 터무니없이 쓰레기 같은 기업일 것이라는 믿음. 155km/h를 던지면 삼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 가서도 데려와야 한다는 믿음. 30홈런을 때린 강타자는 재계약을 따낼 것이라는 믿음….


그 모든 것들은 완전히 틀린 믿음까지는 아녔을지 몰라도! 예, 실제로는 일정부분 유효한 믿음이었을지 몰라도, 언제나 유효하고, 유구하며 고고한 믿음이지는 않았고….


무지와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이자 오판이었을 수도 있었더라는 것….


노동자 역시 자신의 하급자를 퇴사시키는 악덕 상사가 될 수 있고, 사장이자 자본 역시 선할 수 있으며, 개인 역시 사회나 집단의 수혜를 받고 살아갈 수 있으며, 개인이 사회에 피해…를 안겨줄 수도 있으며….


탄탄한 회사라고 반드시 주가가 상승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너무 잘 나가서 상장 폐지되는 기업 역시 있을 수 있으며, 155km/h 직구가 네 번째 볼로 들어가 볼넷을 완성해낼 수도 있으며….


지옥은커녕 야구장 바로 옆집에 사는 좌완 파이어볼러도 스카우트되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가는 30홈런을 때리고도 팀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것. 상황이나 사정에 따라 그렇게나 극과 극으로 다른 취급까지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만큼 제게 당신은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고서 유구하고도 고고히 남아줘야 하는 유일한 존재겠지만….


아니 낡고 말고를 떠나 변해서조차도 안되는 존재겠지만….


그러는 동시에 그들에게는, 개혁하고 혁신해줘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만 보이는 응급환자….


또 그대로 뒀다가는 그들이 구태하며 게으르다는 질 나쁜 인식을 심어주게 할 수도 있음으로써, 명백한 시정과 교화가 진행되어야 할 위험군일 수도 있다는 것….


또 당신을 향한 제 사랑 역시 제게야 당연히 사랑이겠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의 성장이나 생존을 가로막는 집착이자 이기심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나 상반된 평가를 받고, 그렇게나 상반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있다는 것 역시 이제 이해했다면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서, 사회 물을 먹었다면 먹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은 절대 아닙니다. 외려 너무도 당연한 일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이겠죠.


예, 그러니까 그런… 겁니다.


당신을 그리워는 하겠지만….


또 당신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저를 찾아와준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기는 하겠지만….


또 아무리 그때의 당신이 낡았다 하더라도… 저만 좋으면 된 것 아니겠냐…는 생각은 유구하고도, 고고하겠습니다만….


더 이상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이 저를 다시 찾아와주기를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되겠습니다. 그러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겠습니다.


이 말을 뱉는 저 역시도… 마냥 그때 같지만은 않으니….


지난겨울과는 달리…. 앞으로의 그 어떤 겨울에도 그때의 당신은 없겠습니다만….


저는 괜찮다면 괜찮습니다, 제리코 스웨인 ‘경’….




리워크 전 스웨인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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