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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양의 진주 Jan 05. 2022

해외생활 중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주는 타격

    예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과 미팅 일정이 잡혀 마닐라에서 몇 시간 떨어진 지방에 내려가게 되었다. 당일치기로 몇 시간 운전을 해서 다녀와야 했지만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반가워 그 사람이 즐겨먹던 케이크를 사 가기로 했다. 다른 곳에는 잘 없는 그 케이크를 사기 위해 가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는 한 빵집에 들렸다. 그날따라 그 빵집은 손님이 많아 주차 자리가 없었고, 나는 경비원에게 얼른 케이크만 사 오겠다고 어렵게 부탁하여 마침내 주차를 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빵집에 들어가 케이크를 샀다.


    필리핀에 가 볼만한 지역들은 다 가봤다 할 수 있지만 그쪽 지방은 처음이었기에 내비게이션을 의지하여 열심히 길을 찾아가야 했다. 먼 길 끝에 드디어 나는 그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옛날에 받았던 친절함이 생각나 마음이 따뜻하기도 했고, 케이크를 받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뻤고,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던 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미팅을 하기 위해 갔으니 일 관련 이야기도 하지만, 그 사람은 요즘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자기 계발을 하고 있는지 영감을 얻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대화는 내 기대와 너무도 달랐다. 서로 인사하고, 케이크를 전달하고, 일 관련 미팅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10분 안에 이루어졌다. 너무 반가워 이런저런 근황을 공유함으로써 대화를 시작하고, 본론으로 일 관련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더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는 훈훈한 인사로 이어질 것은 나만의 순수한 바람이었나 보다. 시간에 쫓기듯 얼른 일처리를 하고 우리는 바로 헤어졌다.



    나이가 들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선택적으로 정을 주게 된다고 한다.  ‘A 씨는 일적으로 만난 지인이니 20%의 정을, B 씨는 대학교 친구이니 40%의 정을, 사촌언니 C 씨는 그래도 매해 얼굴 보는 가족이니 70%의 정을..’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웃으면서 마음을 주고 정을 주면 나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받고 정겨운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고 항상 나는 생각해 왔었다. 어른들이 달리 이야기해줘도 별로 믿어지지 않았고 ‘내가 웃으며 다가가면 상대방도 나에게 잘해줘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게 사람 관계의 이치 아닌가?’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너무 말랑말랑해 이런 매정한 세상에게 한 대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이 었던 것이다.


    최근에 아주 친한 친구와 헤어진 후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갑게 거절당하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었는데, 내가 마음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상대방이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내가 마음을 활짝 연다고 해서 상대방이 똑같은 크기의 사랑을 주는 것도 당연하게 받을 준비가 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어찌 됐든 사랑은 주는 거고 그저 주는 거라고 하니 친구가 가는 길이 행복하다면 괜찮은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지만, 슬픈 건 슬픈 거였다. 마음 한 켠으로는 나가 여태껏 거절해왔던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마음을 여는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나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먼저 배워 항상 그게 우선이었고, 나 자신을 챙기기보다는 남을 먼저 챙기기 바빴다. 그 친구와 헤어질 때도 예쁘게 포장돼 전달한 내 마음을 깨진 채로 돌려주며, ‘아니야, 난 네 마음이 싫으니 꺼져’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었다.


    물론 오랜만에 일적으로 만난 이 사람이 나에게 꺼지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도 반가웠지만 표현할 줄 몰랐었던 것일 수도 있고, 너무 바빠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할 의도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지금 나는 그 사람이 못 됐고 나를 반겨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너무 정을 주지 않는 게 원래 사람 관계의 이치었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필리핀에서 함께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간 지인들과 연락이 끊기는 일도 한둘이 아닌데, 한 때는 많은 정을 나누던 사람을 어떻게 한 순간 그리 쉽게 끊어낼 수 있나 싶어 원망스러웠었다. 나는 오랫동안 필리핀에 있으면서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을 보내는 역할만 해왔고, 떠나는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여는 훈련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한가 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동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누군가가 달을 보며 나를 생각했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거절하기도 하며, 힘들 때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기보다 위로를 해주면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고 고백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쫓아내는 것밖에 안 되며 나중에 보면 내 주위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동생은 대답해줬다. 이러니 헷갈린다. 마음을 열어야 하는 건지, 열어도 반만 열어야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들어오는 마음만 받고 내 마음은 조금만 줘야 하는 건지 말이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과 헤어지는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I have to leave you now. I'm going to that corner there and turn. You must stay in the car and drive away. Promise not to watch me go beyond the corner. Just drive away and leave me as I leave you. (약속하세요, 제가 저 골목에 들어가면 더 이상 보시지 않겠다고. 제가 당신을 떠나듯 저를 놔두고 떠나세요.)"


    떠나는 사람이 매정한 역할을 맡듯이 보내는 사람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헤어지는 순간 상대방을 마음 편히 놓아줄 수 있는 만큼의 마음의 문만 열어야 하는 것이고, 혹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반가운 마음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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