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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양의 진주 Nov 09. 2022

유럽인이 본 필리핀

필리핀에 거주하는 유럽인들

    나는 유럽에 가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10개 이상의 나라들을 방문해보았으나 미국 외 세계 최강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에 아직 가본 적이 없어 사실 개발 국가들과 개발도상국인 필리핀을 비교할 자격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살면서 한번 정도는 갈 일이 생기리라 믿고 있어 아직 북아메리카에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만, 배낭여행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유럽은 매해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더 어린 나이에 가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이 아쉽다. 그런 유럽 국가들을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들을 접하는 것 외에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것인데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영국, 스페인, 룩셈부르크, 프랑스, 폴란드, 크로아티아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하는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참에 스페인어를 하는 소리를 따라가다 어느 스페인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몇 번을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다 보니, 마닐라에 사는 유럽인들이 매주 일요일 모여 브런치를 함께 하는 ‘브레크퍼스트 클럽’의 일원들을 하나 둘 알게 된 것이다.


    필리핀에 오래 살고 있는 나를 보고 필리핀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미 나의 사고방식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가 대부분이기에 문화적 격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점들은 다 큰 성인이 되어 필리핀으로 이민 온 이 사람들보다 적다. 물론, 필리핀에 오래 산 나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이 나라의 외향적 특징들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유럽인들의 말에 의한 필리핀의 장점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면:

    1) 형편에 크게 의존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긍정적 사고방식

    2)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관광지들

    3)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서비스, 제품, 관광 아이템들 외 다른 상품들의 낮은 가격이다.


대표적인 단점들은:

    1) 마닐라의 교통체증

    2) 열대국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의 비교적 낮은 경쟁심, 그리고 그로 인한 서비스 업계 사람들의 낮은 교육열 및 나태함

    3) 습한 날씨,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크게 유익하지 않은 음식문화가 현지인들의 일상에 주는 타격이다.


    개발이 될 대로 되어 크게 불편할 것이 없는 나라들에서 생활을 하다 온 사람들에게 이 장단점들은 필리핀을 사랑할 수는 있으나 정착할 나라로는 보이지 않는 이유들이다. 역시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바뀔 수 없게 구성된 것들은 심적인 평안을 추구하며, 온화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게끔 되어 있다는 특징이 이 나라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다.


    주로 파견을 받아 마닐라로 이주한 이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멀게 느껴지는 대륙이었기에 발을 디딘 김에 주변 국가들이나 필리핀 내 섬들을 부지런히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글에서도 그렇듯이 유럽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미 사람들, 중동 사람들, 아프리카 사람들, 등 나에게는 멀게 느껴지고 직접 세세하게 각국의 특색을 경험해보지 못한 대륙들을 나는 자주 묶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들 중 몇 명도 아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들은 그나마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를 나눠 생각하지만, 한국인과 필리핀 사람의 얼굴 특징의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어느 누군가가 이야기했을 때 나는 쉽게 충격을 가라앉히지 못했었다. 내 시선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만 보아도 눈 크기, 피부색, 신체 등이 모두 다른데 내가 북유럽과 남유럽 사람들의 신체적 특징의 큰 차이를 모르고 있던 것과 동일하게 그는 나와 비슷한 레벨의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니 나도 민망했다. 이들 중 어느 한 명이 여름에 태국 송크란 축제에 갔었는데 생각보다 게이들이 너무 많아 놀랐고, 연휴에 일본 여행을 갔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 당황했고, 대만 여행 중에 밤마다 야시장을 갔었는데 폴란드식 만두와는 다른 샤오랑바오부터 처음 접해보는 음식들이 많아 신기했다고 이야기해줬다. 아시아인에게는 기본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놀라워하니 반대로 나도 유럽 국가들 관련 상식들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필리핀만큼 노동비가 낮지 않은 나라들에서 온 이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 중에 파트타임 혹은 풀타임으로 서비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개선할 점들을 보지 않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점심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 했는데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과는 다른 음식들이 나열된 계산서를 웨이터가 갖고 온 적이 있었다. 그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에 대한 계산을 제대로 다 할 때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모되었는데, 우리 중 한 사람은 다음 일정이 있어 마음이 조급해 있었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 결국에는 같이 식사하던 친구와 먼저 개인적으로 계산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지만 그 사이에 필리핀 서비스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느라 입이 바빴다.


    대륙까지 다른 타지에 와 유럽인들이 일상적으로 가장 새롭게 느낀 점은 쌀이 주식인 아시아의 식사 문화였다.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이나 파스타를 하루에 한 끼 정도에는 먹을 수 있으나 3번은 먹지 못 하겠는 나와는 반대로 쌀밥을 하루에 3번 먹기란 그들에게 큰 도전 거리였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당연히 빵이나 파스타를 곁들인 식사를 더 자주 했지만 밖에 나와 활동할 때는 원하는 빵이나 파스타가 없는 식당들이 더 많아 불편하다고 했다. 쌀밥보다는 감자나 빵을 주식으로 생각하는 남미 문화를 경험했을 때 힘들었던 나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부분은 몇 세기를 거친 교역 역사, 지리학적 요인, 등에 비롯된 문화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은 분명히 없고, 다른 대륙 음식문화와의 차이에 대해 논하자면 이야기할 것들이 너무 많다.


    예상치 못 한 기회로 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아쉽게 느껴졌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 깊어졌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알게 되고,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외에 내가 누리지 못 하고 있는 이 세상의 또 다른 매력들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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