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사람은 이 팬데믹을 증오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기 싫으니 그날만큼은 어두운 동굴 속에 있게 내버려 둬 달라고 하는 친구는 원래의 밝은 성격과는 너무 달라 많이 낯설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코로나로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건 우리 마음일 뿐, 친구가 편한 대로 해주는 게 최선이라 생각되어 그날은 연락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필리핀에 전염되고 있을 때였던 2020년 3월, 친구의 아버지는 초기 코로나 감염자들 중 한 분이셨다. 트레킹도 자주 가시고,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셨던 친구의 아버지는 50대 분들에 비해 그 누구보다 건강하셨지만 평소와 같이 이발을 하러 가셨다가 갑자기 바이러스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그 후 3-4일이 지난 새벽에 갑자기 열과 몸살이 너무 심해져 황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높은 감염성으로 보호자마저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가족은 의사가 전해주는 소식만을 기다렸다. 코로나 전염 초기 때라 그런지 병에 지식이 많이 없던 의사들은 잘 회복하고 계시다는 소식만 들려주다 입원 7일째 아침 뜻밖의 사망 소식을 가족에게 전했다. 몸살로 인해 아프고 약해져 제대로 서 계시지도 못하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 가족은 가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신 후 1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는 기도모임을 가진다고 했으니 벌써 필리핀에 팬데믹이 지속된 지 1년이 지났었나 보다. 1년이나 지났지만 락다운을 다시 강화하는가 하면, 집단 테스트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여전히 아무런 방책 없는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불평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보다 팬데믹이 막 시작되었을 때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건 무슨 느낌일까? 팬데믹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 중 한 가지 일만 일어나도 충분히 세상이 어지럽게 느껴질 텐데 동시에 두 가지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머리가, 아니, 가슴이 아플까? 그 어느 관계에서의 이별이래도 정말 못 참을 듯이 보고 싶으면 그 사람의 집으로 찾아가면 되고, 심지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들으면 되지만,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찾아가지도,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려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넘어서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되어주고, 해가 쨍쨍한 날은 너무 뜨겁지 않게 그늘이 되어주는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 예상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고, 조언이 필요할 때 항상 달려가 물으면 들어주고 인도해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것. 정말 세상이 무너질 만도 한 것 같다.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여느 필리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놓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 집에 가면 바로 느낄 수 있다. 각 방마다 사진이 걸려있고,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생일날 찍은 사진, 등 심지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사진들이 걸려있다. 식탁에도 아버지 자리는 아직도 비워 놓고 있으며, 아버지가 타시던 자동차, 아버지가 치시던 기타… 여러 가지 소모품들도 그 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결혼하시면서 사신 집은 친구의 아버지는 물론 본인도 그곳에서 평생을 자라왔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있을까? 많은 추억들이 묻어 있는 그 집에서 친구는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하루를 산다’보다는 ‘하루를 견뎌낸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더불어 혼자 남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로하며 직장생활도 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전히 지구는 돈다는 것을 알았던 친구는 (큰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정말 잔인한 현실이다) 보통의 일상생활을 버텨내기 위해 회사를 다니면서도 집에 와서는 매일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정신없는 운동들을 한다. 일요일마다 산길 자전거를 타러 가고, 일주일에 2일은 5km 조깅을 하고3 일은 3시간 웨이트를 들고, 어쩔 때에는 복싱도 나가면서 거의 일주일에 6일 극심한 운동들을 한다. 운동을 할 때에는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서 좋고, 다 끝나면 기분이 좋아지니 꾸준히 운동을 하는 친구다.
1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ㅇ’만 언급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닫을 정도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 가고, 어떻게 그리 잘도 웃는지. 친구들끼리 영상통화를 할 때나, 채팅을 하며 장난을 칠 때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아 보인다. 대학원 입학 신청도 했다. 이렇게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고 해서 영영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픔이 없어지진 않을 테지만, 친구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는 않되 어디선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를 흐뭇하게 만드려 열심히 살고 있다. 지난 과거의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겠지만 친구는 시간을 약 삼아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지금으로써 유일한 방법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