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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더필즈 Feb 06. 2021

그 날의 불고기는 '위로'였다

밥 얻어먹는 제약영업사원 (1)

인스타그램 친구 추천 목록에 낯익은 얼굴이 떡, 하고 떴다.


요즘도 이런 스타일 안경 쓰고 계시네,


10년 전, 부산에서 신경외과 담당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당시 찾아 뵙던 교수님이다.

평소엔 로봇처럼 감정이 없는 것 같다가도 때론 갑자기 따뜻하게 챙겨 주시던

네 귀퉁이가 동그란 네모같은 느낌의 교수님이다.

다른 영업사원 선배님들은 이 교수님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5월의 어느 날 오후 외래진료 종료 시간, 교수님을 찾아 뵙고 그날 준비한 *디테일을 마치고

(*영업사원이 고객에게 제품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진료실을 나가려던 내 등에 대고 교수님이

"저녁 약속 없으면 밥 먹고 가요."

하고 무심한 듯 말씀하셨다.



당연히

내 차로 모시고 가서 내 법인카드로 거하게 식사를 대접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무슨 메뉴를 드시고 싶은 걸까 어떤 명목으로 법인카드를 써야 하나 아니 내 카드를 써야 하나,

머리를 잠시 굴렸다.



그런데

잠시 후 내가 타고 있던 것은 교수님 차였고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조수석에 뻣뻣하게 앉은 채로

그렇게 영도다리를 건넜다.

도착한 곳은 어느 불고기 집이었다.

이 집이 진짜 맛있게 푸짐하게 한다고.



식사 내내 별 말씀도 안 하시고, 불고기 전골만 계속 퍼 주셨다.

유일하게 하셨던 말씀은, 서울에서 혼자 내려와 고생한다고, 그 뿐이었다.

연구를 지원해 달라거나, 과 회식 자리를 마련해 달라거나, 그런 말씀은 하나도 안 하시고

술도 안 드시고 불고기와 당근과 팽이버섯을 그렇게 퍼 주셨다.

너무 많이 시킨 탓에 전골이 좀 남았는데,

사장님에게 이거 포장해 달라고 하시더니 그 뜨뜻미지근한 봉투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오늘은 밥 사 주러 온 거라고, 법카도 못 긁게 하셨다.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스물 셋의 나이에 연고도 없는 부산에 혼자 내려가

담배 냄새 가득한 사무실에서 상사의 커피를 타고

서울에서도 안 먹힐 서툰 운전으로 매일 부산 시내 도로에서 낑낑대고

실적은 당장 잘 안 나오고

부산 말은 조금만 빨라져도 하나도 못 알아 듣겠고

한없이 외롭고 허기진 마음으로 지내던 나에게, 도리어 밥을 사 주시던 로봇 교수님.

까마득한 인생 후배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마음을

말 대신 불고기 가득 담긴 국자로 전해 주시던 교수님.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정함이 좋아서

그러니까, 사람들의 따뜻함이 더 그리워져서

엉엉 울었다.




교수님 잘 지내시죠?

저는 그 때 제약회사 사장님 되겠다던 포부는 온데간데 없고

약국에서 동네 분들 따뜻하게 맞아 드리면서 살고 있어요.

그 때 사 주신 불고기의 달고 짭짜름한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그 날이 저에게 얼마나 짙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하루하루 힘겹던 저에게 그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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