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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Sep 22. 2015

제주의 사계절

여름 그리고 가을

  가족여행으로 떠난 여름의 제주.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 잠을 청하며 혼자 산책을 많이 했다.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든 곳이 제주도라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숙소 근처 혹은 식당 근처. 현지인 지인과 함께라서 관광보다 숨은 명소를  탐방할 수 있었다. 

엉또폭포

  이 당시 엉또폭포는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인데 비밀처럼 감춰진 명소가 있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간 곳.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는 엉또폭포. 안타깝게도 한 여름에 비가 내릴 일이 없으니 나이아가라급 폭포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한가로운 바다 풍경

  한 여름에 비가 올 리 없다는 예상은 다음 날부터 무너졌다. 줄기차게 어두운 하늘만 보여주던 여름 제주도.

  제주도는 사실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는 게 묘미인 곳이다. 이제는 워낙 유명해서 더 이상 감춰진 곳이 없다는 말이 맞지만, 그래도 섬의 숨소리를 들으려면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여행은 주로 '섬' 위주로 많이 다녀왔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섬 가운데 서면 세상의 중심이 이 섬인 것 같고, 잡념도 정리되는 기분이랄까.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바위 틈이라도 살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바위 사이에도 꽃은 핀다. 나 살아있어요. 하고 외치는 것 같아 함부로 거닐 수가 없었다. 대조적인 색감과 질감. 자연은 우리에게 실체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거의 염세주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곤 했다. 밀려드는 회의감과 패배감에 자주 굴복했고 술을 마시거나 외면해버리는 것으로 위로했다. 버리는 시간에 가까운 날들이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가끔은 공허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변하는 어떤 것들을 마주하고 나면 내 자신이 너무 미물(微物)같이 느껴져 위로받는 것이 더 많았다. 스스로를 위한 것이든 타인과 함께하든 응어리 진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여행만 한 것이 없다. 여행은 떠나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 않는가. 20대의 많은 시간을 여행하며 보낸 것이 지금은 가장 큰 재산이자 유일한 재산인 지금. 그리고 서른. 나는 또 떠나야 할 것만 같다. 아직 내게는 더 알아야 할, 가을의 제주가 남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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