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만 고요한 도시, 코르도바.
코로나 시국이 어느새 1년을 넘어서고 있다.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맞이한 코로나 시국은 엄마로의 삶이 전부 인, 다른 자아는 모두 사라진 일상이다. 오랫동안 묵혀둔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에 대한 갈증도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기에 추억으로 위로해야겠다.
그와 나의 여행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안정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 간 여름도시 코르도바는 뜨겁고 강렬했다.
아침에 출발해서 4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기차로 이동했다. 코르도바 역시 두 번째로 온 곳이기에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기차역의 크기도 작고 숙소로 가는 길도 시골마을처럼 조용했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서 정말 유럽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오래된 건물도 상당히 높았고 건물 사이 간격도 좁아서 확실히 도시 느낌이 더 강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석조 건물들과 다리. 느지막한 오후였지만 뙤약볕이 내리쬐고 우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걸었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한 골목들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식당에서 간간히 새어 나오는 라틴풍의 음악이 배경이 되어 마치 이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회교 사원으로 로마, 고딕, 비잔틴, 시리아, 페르시아 건축 양식이 혼재해있는 건축물인 '메스키타'. 전에도 그 감회를 밝힌 바 있지만 정말로 독특한 곳이다. 슬픈 역사 속에 어울리지 않는 양식들이 한데 얽혀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의 기록에서 특별히 '유대인 지구'라는 글자 위에 하트를 그려 넣은 걸 보니 이 산책길이 꽤나 좋았나 보다. 골목 안의 건물 하나하나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와 내가 맞춰 입은 새파란 티셔츠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메스키타 근처의 식당에서 먹은 점심은 소꼬리찜.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몇 가지 타파스. 우리나라 갈비찜과 비주얼은 비슷하지만 맛은 조금 달랐다. 깊은 맛과 뭔가 서양적인 맛?이 있으며 육질이 굉장히 부드러웠다. 풍미 가득한 샹그리아와 정말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아직도 종종 회자되는 곳이다. 수제 맥주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으나 40℃를 넘나드는 더운 날씨에 우리는 맥주를 거의 물처럼 마셨던 것 같다. 취기는 2배속으로 오르고 있단 사실을 간과한 채로.
그리고 밤이 되었다. 맥주만큼 시원했다. 모든 것이 시원해진 밤이었다. 아늑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나날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2016. 8. 4. THU
그날 기록을 보면, '너무 더워서 태양과 하이파이브하는 줄 알았다.'라는 문장이 있다. '덥다'라는 동사에 다 담을 수 없는 더위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진의 순서와 달리 점심을 먹고 메스키타를 갔다는데 샹그리아 한 잔이 와인 한 병과 맞먹는 수준으로 내 몸안에서 작용한 것 같았다. 성당의 꼭대기로 오르는 길이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의 계단처럼 느껴졌으니 태양의 위대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곳은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뜨겁지만 고요한 풍경과 사람들,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 큰 소리를 내어 말을 하기보다는 그에게 속삭이듯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목소리를 크게 하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날부터 우리는 굉장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숙소, 식당, 관광 스폿, 모든 곳이 다 완벽했고 우리의 마음도 풍요로웠다. 이 글을 적는 내내 그때의 감정이 느껴졌다. 지치고 힘든 일들만 계속 일어나는 요즘이지만 40℃의 더위도 밤이 되면 가라앉듯이 우리의 나날들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