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함께 바라보다.
늦은 아침에 신트라로 향했다. 신트라 역시 두 번째였지만 이번에도 지난번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라 확신하고 출발했다. Rossio역 4번 플랫폼에서 출발해서 434번 버스를 타고 신트라 도착. (Rossio역에는 신트라 패스권도 판매하고 있으니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
무어인의 성은 고성(古城)이라서 성외곽은 그리 특이하지 않다. 만리장성처럼 산길을 따라 이어져 있기 때문에 성에 도착하기까지 등산을 각오해야 한다. 날이 매우 화창한 관계로 많이 더웠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산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금세 마르게 해주었다. 내부는 보존이 잘 되어 있었고 페나성은 정말 장난감 같았다. 레고랜드 느낌도 나고. 맑은 날씨와 대비를 이루는 색감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늦은 아침에 도착했기에 성을 둘러보고 나니 오후가 되었다. 해가 지기 전에 호카곶으로 가야 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403번을 타고 호카곶으로 출발.
마침내, 호카곶에 도착했다. 4년 전에 왔을 때에는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기도 했고 날씨도 흐렸기 때문에 풍경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섭지코지 느낌이 난다고 했던가. 해가 넘어가고 있을 때라 갑자기 추워졌고 사위가 어둑해졌지만 그래도 그곳은 서유럽의 끝, 호카곶이었다. 십자가 탑에는 유럽의 땅끝임을 알리는 시 구절이 쓰여 있다.
“여기... 육지가 끝나는 곳이고,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카몽이스-
무한한 끝을 바라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자연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미물인가. 철학적 의미가 가득 담긴 고뇌가 잠시 스쳤다. 끝을 함께 마주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낭만적이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요동쳤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급격한 온도변화로 우리는 추위와 허기에 떨었다. 저녁 만찬으로 숙소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을 갔는데 웨이팅이 어마어마했다. 꽤 오랜 시간 기다렸기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생각보다 맛있지 않아서 기운이 쭉 빠졌다. 한국인이 많은 석쇠구이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던 곳.
2016. 8. 12. FRI
많이 걸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탓에 서두르는 마음으로 일정을 보내다 보니 고대했던 호카곶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고 매우 피곤했다. 다음 날은 오전 일정을 쉬는 것으로 하고 그다음 여행지인 포르투로 향했다. 아마도 이날 너무 무리한 탓에 리스본이 조금 힘든 기억 속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정을 빠듯하게 짜서 아쉬움이 남았다.
스페인과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드넓은 바다 건너를 상상하고 탐험했던 그들의 호기심을 닮아 강인하고 묵직한 여운이 남게 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