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맞이하는 새해 -자유여행-
해가 바뀌었다. 유럽을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 전이다. 올해, 다시 한 번 유럽 여행의 계획을 잡았다. 3개월 정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예정이라 다시 한 번 지난 여행을 곱씹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한동안 놓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본다. 마드리드에서는 3일을 보냈다. 누적된 피로 때문에 결국 몸살이 나서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함께 갔던 친구는 나를 간호하는데 하루를 보냈고 너무 미안해서 아직도 고마워하고 있다.
유럽여행을 하며 가장 불편했던 점은 길을 찾는 것과 와이파이를 찾는 것이었다. 영어로 설명이 자세히 되어있는 곳도 없고 관광안내소도 흔치 않아서 길을 찾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12월 31일에 도착했는데 도시가 너무 고요해서 적응이 잘 안됐다. 바르셀로나는 지나치게 활발한 분위기였는데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 날씨도 그에 걸맞게 습하고 안개도 많았다. 미술관이 많은 곳인 Atocha Renfe역으로 향했는데 웬걸, 마지막 날이라 모두 문을 닫은 상태. 다시 역으로 돌아와 숙소로 가려다 아쉬워서 핫초코 한 잔 하기로 했다. 와이파이 되는 곳이라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역사 안 카페. 핫초코가 상상 그 이상으로 훌륭해서 뜬금없이 감탄했다. 돌아오는 길에 투우장을 지났는데 건물이 너무 견고하고 이뻐서 투우장으로 상상할 수가 없었다. 둥근 모양의 석조 건물로 들어가면 아늑한 정원이 나올 것 같지만 치열한 투우 경기가 펼쳐진다니 반전의 매력이 느껴졌다.
초대형 비누방울을 만드는 사내와 거리의 악사들. 낭만적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골몰하는 모습들.
건축 양식이야 유럽 어디를 가도 웅장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스페인에서 만난 건물들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었다. 스페인이 원래 자치국가들의 집합체라 그런지 몰라도 도시마다 느껴지는 풍경이 다채로웠다. 여러 가지 문화와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랄까. 유난히도 청명한 하늘 아래, 그림 같은 건축물들은 이곳이 동화 속 어느 한 마을을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마드리드는 돈키호테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군데군데 세르반테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만화나 영화로 접했던 돈키호테의 내용과 원작 소설 속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는데 그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접했던 돈키호테는 희극에 가까웠다면 소설은 비극에 가까웠다. 인간의 부조리한 면을 조금은 슬프게 그린 소설이었다. 고전 소설은 읽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돈키호테만은 고전이라는 느낌이 없는 고전이다. 수많은 역사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것, 변하지 않는 삶의 부조리는 영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는 없지만 믿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익숙해진 성당.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소원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 종교는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태양의 문'이란 뜻의 솔 광장(Puerta del Sol)을 지나 걷다 보면, 스페인 광장과왕궁, 대성당이 나온다. 그 길을 또 따라 걸으면 마요르 광장과 산미구엘 시장(San Miguel Market)이 나온다. 시장은, 여행을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시장은 그곳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바르셀로나의 산호세 시장이 해산물과 요리가 많은 곳이었다면 산미구엘 시장은 조금 더 아기자기한 물품들이 많이 파는 곳이었다. 핀초라 불리는 스페인의 빵과 말린 돼지고기의 일종인 하몽 등은 보관이 용이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공급받을 수 있는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와 조금 다른 점.
다음 날은 프라도 미술관을 가는 날이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곳이므로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벨라스케스 Diego de Velazquez, 고야 Francisco de Goya 그리고 피카소 Pablo Picasso 까지.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 (피카소는 피카소 미술관이 따로 있음) 크기도 크지만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하루 만에 둘러보기는 불가하다고 했다. 만 26세 미만의 학생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난 1월이 되면서 27세가 되었다. 나만, 12유로 내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파서 달리와 고야의 작품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내게 한이 되고 말았다.
일정이 빠듯한 여행을 하다 보니 몸이 견디지 못한 듯 하루 내리 아팠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으니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스페인은 예술가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Saa vedra와 같은 작가 외에도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를 스페인에서 집필했다. 화가들은 위에서 이미 언급했고. 이렇듯 예술가의 기운을 받기 위해 우리도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마드리드에서 방콕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마드리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