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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17. 2016

유럽은 멀지 않아요.

코르도바, 비극이 남긴 아름다움 -자유여행-

코르도바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하다.

  역에서 숙소까지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날씨도 한 겨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1월 초였지만 체감온도 20도에 육박하는 따뜻한 봄 날씨.

  한 겨울에 꽃이라니. 깜짝 놀란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흔들린 초점. 평생 볼 수 있는 오렌지 나무를 모두 본 것 같다. 곳곳에 높게 뻗어 있는 오렌지 나무에 싱그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지날 때마다 향긋한 냄새가 퍼져서 맛있게 보였다. 

색감이 너무 이뻤던 오렌지 나무, 맛이 떫은 건 반전

  상큼한 비주얼을 하고 있지만 매우 떫다. 일행 중에 키가 큰 친구가 하나 따줬는데 한 입 베어 물자 오렌지가 검게 보이는 착시 효과까지 일었다. 

  일행 중 한 친구의 캐리어 가방이 부서지는 바람에 가방을 사러 다녔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3시 즈음이라 모두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시에스타  Siesta'라는 낮잠시간이라고. 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다. 그 시간에는 가게도 일제히 문을 닫고 쉰다고. 그 여유가 부럽기도 했지만 긴박한 상황의 일행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메스키타  Mezquita'를 궁극적인 목적지로 정했지만 길이 워낙 미로 같았고 여기저기 한 눈을 팔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이어져서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길을 잘못 들어서 나온 호숫가.
로마다리 입구 Puerta del puente 
로마다리 Puente Romanod

  우여곡절 끝에 '로마 다리 Puente Romano' 앞 까지 도달했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 당시 중심지였기 때문에 코르도바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절묘한 조합이 특색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플라멩코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산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시간과 비례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Mezquita 내부 모습. 로마와 이슬람 문화의 교묘한 조합. 교황으로 보이는 조각상과 같이 기독교 특유의 화려한 건축양식이 눈에 띈다. 기독교가 다시 세력을 펼치면서 본래 세워져 있던 사원 안에 무리를 해서 예배당을 중심에 건설하는 바람에 두 종교가 한 곳에 기묘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밖에서 봤을 때는 꽤 절묘한 조합이라 생각했다. 역사적 배경을 듣기 전에는 뭔가 융합으로 보이기도 했고 지구상에 이토록 대비되는 종교가 조화를 이룬 곳이 있을까 긍정적인 의구심도 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음산했다. 

  이슬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색감과 구조, 금색의 문양으로 장식된 통로. 닫힌 문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붉은색으로 일정하게 줄이 그어져 있는 석조 기둥. 큰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져서 음산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 것 같다. 결국 종교가 순수한 신념 그 이상인 세력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는 씁쓸한 잔상을 남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아름다웠다. 비극이 남긴 아름다움이 이런 것일까? 전쟁의 반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슬퍼했을 것이다. 함부로 감탄사를 내뱉을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유적이 된 것 같다. 우리의 역사도 많은 비극이 있었는데 그것을 유지하며 돌이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샹그리아 한 잔 했다.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알코올이 들어간 샹그리아를 판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만큼 이곳에서는 즐겨 마시는 음료의 일종이라는 뜻이니. 물론 술 좋아하는 나에게는 고마울 따름이었지.

  앙상한 나무에 전구를 무지하게 달아놔서 나뭇잎인 줄 알았다.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로 비교샷을 찍어봤다. 날씨가 화창한 와중에도 앙상한 나무들이 있고, 겨울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그 나무들을 덮고 있었다. 쓸쓸하고 경이로운 마음을 가득 담은 코르도바. 끝.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 지도 모르게 빠듯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묵고 있는 도시를 하루 만에 다 둘러볼 수 없는데도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그래서 밥을 먹는 시간을 아껴 걷고 또 걸었다. 몸이 먼저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여행 내내  한두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지쳐갈 즈음이었는데 그 무렵에 머무렀던 도시 코르도바는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한적하기도 했고 좀 더 여유롭게 다녀보자고 목적지는 한 곳만 정해서 다녔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라나다의 연장 선상에서 느껴지는 경건함.  잔잔한 일상의 사람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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