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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Sep 14. 2018

난 관종이 아닙니다.

얼마 전 누군가가 "넌 무슨 인스타 게시물이 천 개가 넘냐 SNS 중독자냐" 라길래 피식했다.

애초에 그는 SNS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 인스타그램은

내 기록보관소이고, 기간별로 잘 분류된 사진첩이며, 전시회이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수단으로써의 중요도는 30%밖에 안된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망각할 때마다

가장 쉽게 기억을 되돌려 확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 피드다. 그런 의미로 내 기준에서는 천 개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

이처럼 사물의 모든 현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그는 오직 보이는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SNS이기에 많다고 한 것이고, 나는 내가 보는 나의 피드의 본질적 역할이 더 중요하기에 적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이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사례이다.

내가 보는 나는 잘생기지 않았지만 인간관계를 맺기에 문제가 될 정도라 보지는 않는다. 내겐 타인에게 어필하는 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러니 외모에 대한 부분의 중요도는 내게 있어서 그리 높지 않다. 없는 것에 집착할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 입학이다. 대학은 중요한 건 맞는데,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나는 현재의 직장이 내 대학 4년의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업종이다. 그저 내 의사와 표현력만으로 입사한 곳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다 보면 "그냥 바로 취업이나 할걸" 이 생각을 한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 간 결정적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가야 인간 구실하고 대접해준다는 미명 하에, 안 갔을 때 생기는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간 것뿐이다.

지금은 조금 후회한다. 그냥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할걸. 그럼 조금 더 내가 원하는 곳에 더 가까이 가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곤 한다.


"초두 효과"라는 말이 있다. 먼저 제시된 정보가 추후 알게 된 정보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사람의 외관상 이미지를 인식하는데 쓰는 말이지만 대학 입학에 대한 이미지도 그런 식으로 정해진다.

학교나 사회 어디서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정보는 강력하게 인식시킨다. 

그러면 인간은 판단력이 흩어진다.


대학은 꼭 가야 한다는 머릿속에 세뇌된 이미지가, 안 가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정보를 완벽하게 압도해버린다. 

우리는 정보가 과다하게 흘러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정보들을 분별할만한 변별력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내 삶의 진행방식을 문장으로 함축시켜 텍스트로 만든 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방식들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객체는 모든 정보들을 판단하는 수단이자 결정권 자이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하든 어리석은 판단을 하든 후회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


나는 흘러넘쳐서 이리저리 떠도는 정보들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나 높은 행복감과 자존감을 얻곤 한다. 때로는 미흡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만 한 행동도 당신이 좋다면 해라.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선택하고 책임지겠느냐는 당신만의 묵직한 채계가 완성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러고 나면 단언컨대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작고 모자라더라도 나의 세상을 만들다 죽고 싶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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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_wild_ride 로 찾아 오시면 다른 종류의 글들과 저의 엉망진창 와장창 라이프 스타일을 구경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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