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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Sep 19. 2018

저주하며 살것인가, 축복하며 살것인가.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물이나 대상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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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싫어하거나 미워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들이 당신을 잘 알던가?

천만에, 당신에 대해 조금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했지,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거나 절교하는 일은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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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정말 괜찮은 영화들이 개봉한다.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 처음 개봉했을 때 꽤나 호불호가 갈렸다. 

시공간에 대한 과학 이론과 문학적 관념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은 그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사람에게는

노잼으로 평가되었고 이해할만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잼으로 평가되었었다.

결국 알거나 이해되는 만큼 재밌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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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귀납적 추론을 기피한다. 재미없고 귀찮으며 한 인간에 대한 지루한 관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여러 상황들과 대조해가며 이해하는 과정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을 가져다준다.

귀납법에 의거한 관찰은 큰 범주에서 '이 사람은 대강 어떤 부류의 사람이구나' 정도를 대략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든다.

늘 말했던 것처럼 정의가 가능하면 글로 쓸 수 있고, 글로 쓴 것은 몇 번 보다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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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리 옹호자다. 설리가 뭘 잘했다기보다 누구에게도 욕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설파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녀는 자기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한다. 

그로 인해 생기는 안티들도 많지만 자유분방한 모습은 사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모습들이다.

자기 주체성이 극에 달해야만 할 수 있는 괴랄한 표현들은 알고 보면 창의적인 사고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녀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 말하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그들은 한 번도 자기방식대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틀에 박힌 사고와 보수적 채계가 주는 안정감만이 진리라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고나리질 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기보다 내가 보기엔 심히 올드하고, 천박하며, 구리다는거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너무 추상적이라 별로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추상파 작가에게 추상적이라고 욕하는 건 자기가 머저리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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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 겨우 나정도 독특함이 이해가 안 되면 세상 살기 피곤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말이나 행동에 민감한 내 본래의 성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뭐든 오래 두고 깊게 보려는 사고의 확장이 이어질수록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증오를 줄 여가는 일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해하려 하는 만큼 이해가 되는 거고, 보려 하는 만큼 보이게 되는 거다. 

그래서 이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싫지 않다. 잘살았으면 좋겠다.  생각날 때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축복하려는 태도는 되려 내 삶을 축복 속으로 이끌고 있다.


사물을 보는 방식이 좋음/나쁨이 아닌 더 선호하는것과/덜선호하는것 정도로 바뀌는 게 좋다.

쉽게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태도는 축복도 하지만 저주도 하며 살게 되는 어두움과 자주 결부되곤 한다.


하지만 모든 대상과 현상을 더 선호함과 덜 선호함 정도로 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축복해줄 만한 것들로 귀결된다.

어둠은 빛의 부재다. 스스로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어서 느끼는 잦은 불편함 들은 

당신을 어두움 가운데로 이끌고 가기에 충분하다. 

거의 모든 불행의 종류들은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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