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원빈 톤으로)

by 터뷸런스

연예인 태연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역시.."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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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태연이면 거의 아시아권의 퀸에 가깝다. 인스타 댓글만 봐도 알겠지만 동남아에서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국내에서는 말할 게 없다. 음원도 내면 항상 멜론 순위권이고 아마 저작권료도 어마어마할 거다.

본인이 말을 안 해 그렇지 지디랑 버는 게 큰 차이 없었을 거라 예상한다.

가진 것도 많은데 심지어 예쁘고 귀여우며 남녀불문 인기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우울증을 앓는다는 게 아이러니 한가? 아니, 내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가진 것은 행복지수와 절대적 상관관계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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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 없으면 불행한 게 맞다. 빚까지 있다면 늘 벌어서 갚는데 써야 하니까. 다만 빚이 많이 없다는 전제하에, 대개 지금 150 벌고 나중에 300 벌면 두배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 경제적 여유 = 삶의 행복 ]이 논리로 사는 직장인들을 수 없이 봐왔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온갖 힘을 다 쏟아내서 1년에 몇십만 원 더 받으려고 삶을 일로 가득가득 채워나가는데, 그 욕심이 본인의 오늘을 불행으로 밀어 넣는 경우는 더 많이 봤다.


어떤 것을 더 많이 소유함으로 올라가는 행복지수의 상한선은 무엇보다도 명확해서다.

한국사회는 결과론적이다. 1등과 금메달에 목숨 걸고 그 이하는 다 평가절하해버린다.

오죽하면 대치동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스카이캐슬 드라마가 너무 자신들 이야기라 기분이 나빠서 안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 않나.

애초에 행복의 절대평가 기준에 모두 다 함께 동참한 결과, 한국은 상위 10프로의 부자들 외에는 모두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 취급하는 삶을 스스로 취득했다. 마치 자격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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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정은 어떤 목적을 위한 과정인지 스스로 이해될 때 기쁨이 된다.


소녀시대 태연이 멍청하고 부족해서 우울증을 걸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무엇을 얼마나 버느냐 보다, 그것을 자신의 자아가 존엄해지도록 만드는 과정에 쓰지 못하면 당연히 무너진다.


단돈 10만 원을 벌어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일을 위해 벌면 하루가 너무나 보람차 지는 게 당연하다.

반면 당신이 한 달에 천을 넘게 버는 고소득자라 하더라도, 버는 게 목적이 되면 당장 오늘 하루가 지옥이 되는 것도 당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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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많이 벌면서 겸손한 사람이다.

성경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쓰여있다.

가진 게 많을수록 더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는 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겸손하지도 못하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소유라는 행위가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능력, 무기력, 무 포용력 같은 가진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모든 현상은

당신의 자아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적"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오늘"이 아닐 때, 당신에게도 발생한다.

무엇을 위해 얼마나 더 소유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원하는 걸 가지면 그게 진정 당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세상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절대 당신을 백 퍼센트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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