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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Dec 12. 2017

내가 나 되어감.

나는 나의 철학에 집착한다. 

내가 수준 이하의 잡념을 배설하거나, 다양한 오브제를 보며 해석하는 감각이 떨어지는 

순간들에 예민해진다. 


이유인즉슨, 내가 껍데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입는 것이나, 내 자아가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너무 싫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들에 그토록 연연하는 속물이라니.

그런데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순간들에는 폐기물임을 인정하고, 알맹이도 신경 쓰는 재활용품 정도는 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단계에서는 "이 정도"라는 선을 그어놓고, 그것보단 나아지길 원했다.

근데 그게 진짜 멍청이 같은 짓이었다. 이 정도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었다.

애초에 나는 하나님이 만드실 때 단지 나로 만들었다. 누구 같은 내가 아닌 그냥 "나"로. 

내가 생각한 수준에서 누군가를 닮아보려 아무리 노력해봤자

"잘 만들어진 복제품" 정도 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라는 선을 지워버리자, 본연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원하고,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하며, 무엇을 더 잘하고, 어떤 것이 내가 행복해하는 습관인지, 하나씩

발견해갈 때마다 나는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 시야는 관점에 대한 시야가 아닌, 소음들을 차단하는 시야였다.


나는 글을 이곳저곳에 시도 때도 없이 배설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주제 또한 가리지 않는다. 얼마 전엔 페미니즘이 관심분야였고,

현재는 성평등에 관심을 갖고 많은 글들을 읽고 있다.


나는 어제의 나와도 다르며, 한 달 전의 나도 아니고, 1년 전의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그 달라지는 순간들은 하나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하나씩 쌓여간다. 마치 시간처럼.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쌓여서 내가 된다. 


마찬가지다. 나의 사상과 철학은 남의 것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저 자극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내 것이 만들어질 뿐이고, 누군가와 색이 비슷해 보여도 정확히 따지면 같은 색은 아니다.

그가 파란색이라면 나는 하늘색이다. 그가 하늘색이라면 나는 파란색 빛을 띠는 하늘색이다.

한 끗 차인데,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내가 만든 나 이기 때문이다.

그는 촘촘한 그물망처럼 엮여진 복잡한 모습이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똑같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잘만들어진 유사품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굉장히 심플하고 간단하게 만들어졌지만 리미티드 에디션이고.


나는 내 자신이 "made in me" 라는 사실에 기쁘고

"마스터 마인드" 가 되려는 의지에 대한 즐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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