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국산과 중국산을 어떻게 가려내야할지는 모르겠다.
친정에 가면 엄마가 시골에서 직접 짠 참기름이라며 한병씩 주셨다.
신혼 때 맞벌이를 하며 요리를 할 일이 많지는않았고, 참기름의 고소하고 진한 냄새에도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문제는 아기가 유아식을 하며 계란찜을 잘 먹기 시작한 이후 부터였다. 계란찜에 참기름을 한방울씩 떨어뜨려 주었는데, 일하랴 애 키우랴 늘 바쁘고 정신이 없으니 아기 반찬은 당근이 송송 들어간 계란찜 아니면 계란후라이에 소고기였다.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기는 그나마 계란찜에 넣어주는 당근 정도는 잘 먹어주어 나름대로 '계란은 완전 식품이지' 하며 합리화를 하며 늘 1일 1계란 식단을 주게 되었다.
작년 어느 때, 3시간 거리의 친정에 다녀온 일이었다.
외할머니댁은 친정에서도 1시간 30분이나 더 내려가야 하니 피곤해서 늦잠을 자고있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나와 아기, 친정엄마, 친정아빠, 이모를 내가 직접 운전하여 시골 할머니댁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아마 기억하기로는 외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시골에서 본 날이었다.
그때만해도 정신도 또렷하시고 정정하셨는데.. 아기를 데려왔다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튼 엄마는 이모 할머니 댁에 잠시 들러 과일을 주고 와야된다고 하셨다.
할머니 댁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이모할머니 댁을 가서 이모 할머니가 안계신 틈을 타 우렁각시처럼 몰래 마당에 과일 박스를 두고 엄마는 차에 타자마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아마 이모할머니께 마음만 전하되 부담은 드리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로 엄마는 "이모~ 마당에 과일 뒀네. 얼굴 못보고 그냥 가네~" 하는 엄마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이모 할머니는 또 역정을 내셨다.
그런데 엄마가 "오매오매! 그럼 다시 차 돌려야지! 오매 다르건 몰라도 그건 받야가야지!" 라고 하셨다.
우리 엄마는 1분 1초가 아까운 바지런한 성격으로 엄마가 차를 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시 차를 돌리라고? 도대체 무엇이길래?'
다시 돌아간 이모 할머니 댁에서 공수 받은 것은 다름아닌 참기름이었다.
이름하야 초록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고소하고 진한 냄새가 나는 참기름.
엄마 말로는 이모할머니가 직접 국산 깨를 가지고 방앗간을 가서 직접 짜는 것을 감시(?) 한 뒤에 건네받은 '진짜 국산 참기름'이라는 것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 뭘 이렇게까지?'
한편으로 '도대체 저게 얼마나 귀하길래?' 하며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진하고 고소한 참기름으로 요리한 밑반찬을 먹는것이 익숙했고, 우리집 부엌에서 나던 익숙한 향이었다. 그게 그렇게 귀한 줄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말했다. "이제 이건 돈 주고도 못사!'"라며 참기름 세병을 보며 뿌듯해했다.
그렇게 참기름은 우리집으로 와 몇달 여간 아기의 반찬을 만드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해왔다. 콩나물 무침을 할 때도, 시금치 무침을 할 때도.
그런데 어느 날 "여보 참기름이 다 떨어졌어. 새로 사야겠어." 하고 남편이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응 그래~ 집 앞에 시장가서 한번 사보지 뭐~"라고 말했다.
시장 방앗간을 둘러보니 중국산 참기름은 13,000원 국산 참기름은 30,000원 이었다.
'헉 이렇게나 비싸다고 ?!' 싶었지만 나는 몇 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3만원을 꺼내 국산 참기름으로 구매했다.
아기가 먹을 그 고소하고 진한 참기름 냄새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뚜껑을 열고 참기를 냄새를 맡아보았다.
'응..? ' 내가 알던 그 참기름 냄새가 아니었다. '뭐지 이 맹맹한 냄새는..?'
무득 버리려고 놓아둔 초록색 병이 생각나 뚜껑을 열어보니 확연한 향 차이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엄마의 말이 실감이 났다.'돈 주고도 못사!' 라고 뿌듯해하던 엄마의 표정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시장에서 국산이라고 해서 삼만원이나 주고 참기름을 샀는데 달라도 너무 달라!" 라고 했다.
엄마는 "당연히 다르지!" 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엄마도 이제 그건 못먹어.."라고 했다.
'왜?'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진도에 계신 외할머니가 몇달새에 몸이 많이 불편해져 친정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기시면서 이제 진도에 예전만큼 갈 일이 없다는 뜻이고,
이제 이모 할머니와 왕래하며 참기름을 받아오기에는 이모 할머니도 연로하셨다는 뜻이겠지.
불현듯 그 진하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영영 못 맡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왜 시장 참기름은 국산이라면서 3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이 정도 밖에 안되는거야 하는 생각에 화도 났다.
버리려고 내놓은 참기름 병을 다시 들여와 마지막 한 방울도 더 떨어뜨려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로 만든 계란찜은 아기의 입으로 들어갔다.
참기름에 대한 감수성이 폭발함도 잠시, 아들내미의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