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자아 셋을 키우는 것과 같다
큰 아이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현실감이 없다. 꼬맹이.
분유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늘 토해내던 여리디 여리던 녀석이 이제 다 컸다고 나라에서 성인이 되라고 한다. 내 눈엔 아직도 솜털 뽀송한 아가일뿐인데 벌써 17년생을 살았다고 말이다. 사회에선 인정해 줄지 모르나 내 눈에는 아직도 어설프기만 한 서툰 애송이다. 불안하고 또 불안하고 애틋하고 또 애틋하고.
서툰 엄마로 첫 아이를 맞이해서 실수투성이 연발의 첫 신고식을 치렀는데 그런 아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좀 더 능숙한 엄마였어야 하는데 순번을 잘 못 타고나 감당도 안 되는 엄마라는 짐을 진 초보엄마를 우리 아이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받아들여주었다. 그게 미안해서 나는 아직도 큰 아이에게만큼은 늘 열등엄마다.
그러다 돌아보니 언니만큼 키가 큰 둘째가 아이돌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며 밤잠까지 포기하겠단다. 소위 9시 공주인 우리 둘째가 말이다. 잠을 이겨내며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데뷔를 지켜야 한다며 진심인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이만큼 컸구나. 그러고 보니 둘째도 이미 열세 살이다. 아이들 나이 드는 거만큼 내가 늙었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나는 아직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막내는 둘째랑 한 살 차이 연년생. 매일 남매의 난을 겪으며 지들의 사회성은 성장하겠지만, 중재하느라 어느 편도 아닌 중간에 서서 둘 중 어느 하나도 서운하지 않도록 나름 고민하고 또 고민하느라 나는 이미 매일이 지친 파뿌리 같다. 예전 큰 아이 때였다면 내 감정에 내가 어쩔 줄 몰라서 소리만 질러댔을 텐데 이미 나는 그게 아이들에게 나쁜, 아주 나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내 인격이 아닌 다른 인격이 되어 감정을 조절하고 누구에게도 서운하지 않게끔 각자의 편을 조심스럽게 들어주고 있다. 나는 판사가 아닌 단지 엄마이기에 아이들만의 지지자로서 최선을 다하려 매일 참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장하는 중이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 속에 작은 화덩어리를 만났다.
아이가 내 성에 차지 않으면 늘 불같이 화를 냈고, 그러면서도 냉정한 척 우아한 척, 육아서의 달인인 양 아이에게 잘난 척을 했다. 작은 화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 화는 오롯이 내 몫임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에게 화살처럼 되돌아갔다. 어쩌면 너무나 잘 성장하고 있던 아이에게 내 욕심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다그치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나는 아이 셋에게 적용하는 나만의 잣대가 조금씩 다르다.
큰 아이 때 어린아이 같은 엄마, 철없는 엄마였기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신경 쓴다. 둘째 때는 준비한 엄마, 그럼에도 미숙한 엄마지만 간식을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늘 먹을걸 고민하는 요리사 엄마가 되어 주려고 애쓰는 중이다. 셋째를 낳으며 이제 엄마라고 스스로 칭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지 했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여전히 부족한 엄마임을 깨달았다. 물리적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작을 막둥이 아들~ 늘 치댕치댕 엄마껌딱지 아들은 서서히 엄마와 떨어져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속에 아이들마다 각각의 엄마가 있는 느낌? 차별이 아니라 아이들 맞춤형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은 셋 다 변함없이 말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치러내는 성장통만큼 나 역시 겪어 나가고 있다.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마음껏 표현하고 온몸의 촉각을 열고 아이들의 손짓과 표정, 눈에 보이지 않는 조심스러운 마음까지 헤아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세상최고로 사랑하는 내 마음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
사진 : 주왕산 국립공원 안 대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