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심 세우기에 진심인 식구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시작은 남편이었을거다. 하도 이상한 걸 많이 하는 양반이니까. 다 쓴 휴지심을 무심코 툭 던졌는데 훅 섰단다. 이걸 무슨 하늘의 계시인 것 마냥 들떠서는 그 다음부터 설 만한 모든 것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아무래도 여성 비율이 높다 보니 화장실 휴지 사용량이 좀 많은 편이다. 그래서 휴지심도 이삼일에 하나씩 나오기에 심심찮은 재밋거리처럼 어느샌가 온 가족 모두 내가 질쏘냐 휴지심 세우기에 열혈이 되었다.
그렇게 세우기 시작한 휴지심이 오갈데를 잃어 주방 빈 켠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제 범람 수위에 이르러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아빠 방(안방) 발코니에 쌓으면 어때?"
물론 내 의견이다. 꼴뵈기 싫은데 꼴뵈기 싫은 양반 방에 몰아넣자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거기만큼 제약없이 앞으로도 쭈욱 쌓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우리집엔 더 이상 없다. 적어도 내 눈엔 말이다.
"자, 이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다 무너뜨리고 새로 쌓아요!"
"그래? 그러자 그럼"
그렇게 우리의 휴지심 쌓기 배틀이 시작되었다. 게임 참가자는 나와 중딩, 초6 세명.
총 22개의 휴지심을 최소 6개 이상씩 쌓고 그 마지막 두둥 키친타올 심을 던져 세우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되는 걸로 정했다. 출발은 당연 내가 1등이다. 순신각에 8개의 휴지심을 세웠다. 그리고 도전한 키친 타올 세우기. 아오...진짜 이게 뭐라고 진심인데?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내가 참 몬났다 싶은데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또 뭐지? 그 사이 막내가 여덟개의 휴지심을 세우고 키친타올에 도전한다. 둘째가 영 시원찮기에 우리가 두 개씩 더하기로 중간에 룰을 살짝 바꿨기에 나와 막내는 8개, 그 때까지만 해도 둘째는 4개도 못 세우고 고전분투중이다. 그렇게 세 번씩 돌아가면 키친타올 심을 던지던 중 둘째가
"앗싸 나도 6개~~~~다 죽었쓰~~~"
지*한다. 다 죽긴 지가 제일 못하면서. 우리는 썩소를 날리면 해볼테면 해봐라지 계속 도전을 이어갔다.
어라...근데 이게 무슨... 둘째가 한 방에 키친타올 심을 세우며 한 밤중 휴지심 세우기 도전은 반전으로 끝이 났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셋 다 얼굴이 웃다가 터질 지경이다. 인생은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다.
* 어제 놓친 연재 대신 일상 글 하나 올려봅니다.
요즘 글쓰기가 힘이 듭니다ㅠㅠ
글태기일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