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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계엄과 왜곡

12월 3일, 한국과 후쿠오카 여행에서 있었던 일.

by 열정아줌마

지날 달 급히 여행을 다녀왔다.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제주도 여행 한 번 밖에 못 시켜 드렸다는 맏딸로서의 미안함이 그동안 내재되어 있었다. '다른 집 자식들은 해외여행도 시켜 준다던데, '라며 노골적으로 자식들의 무성의함을 비난하는 아빠 때문에 더 반감이 들어 일부러 가지 않았던 것도 있다.

올해 칠십을 맞는 엄마,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새 학기 즈음에 맞이하는 엄마의 생일에 여행을 가기는 무리일 듯해서, 급작스럽고도 갑작스럽게 12월 3일부터 2박 3일간의 후쿠오카 여행 일정을 급히 짜기 시작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MBTI'의 T도 J도 아닌지라, 여행 일정을 잡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또 즉흥적인 지랄 맞은 본성을 타고나서 한 번 생각한 이상, 해치워야 풀리는 인간인지라 동생에게 연차를 강요하고, 도저히 시간이 안 된다는 막내는 과감히 제친 후, 엄마 아빠, 나, 은우 넷이서 후쿠오카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이란, 무릇 가기 전이 가장 설레는 법이다. 짐을 싸고, 여행 일정을 계획하며 설레는 딱 거기까지가 좋은 법! 공항에서 줄을 서고, 탑승 시간까지 무료한 시간을 어이없는 가격의 커피와 주전부리로 해결하다 보면 햇빛 가득 들어오는 내 집 거실이 그때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무사히 후쿠오카 공항에 발을 내렸다.

날씨는 따뜻했고, 아직 녹슬지 않은 나의 일본어 실력은 빛을 발했다. 택시 기사님은 친절했고, 첫날 점심부터 저녁까지 식사도 아주 훌륭했다. 특히, 저녁 식사로 찾은 야키니쿠 집에서 아르바이트 생에게 팁을 줄 정도로 엄마의 기분은 승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안 가는 노래방에서 칠십을 맞이한 노부모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으며, 금주 중 일탈로 마신 하이볼은 내 기분도 끌어올려 주었다. (여행 전 후 일절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말을 꼭 첨부하고 싶다. 나의 금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넷이서 함께 잘 수 있는 방을 어렵사리 구한 수고도 모두에게 인정받았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지 않을까?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실시간 상황에 대한 남편의 카톡뿐이었던 나와 달리, 동생의 핸드폰은 비상이 떨어져 난리도 아닌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알기라도 한 듯, 여행 중인 동료들의 부러운 카톡과 갑작스러운 민주국가에서 계엄이라는 역사책에서나 등장할 만한 단어가 실감이 나지 않는 경찰공무원들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숙면을 이루는 동안 동생의 핸드폰 안에서 또 뉴스 1면에 속보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계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묘한 기분을 안고, 관광지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얘기가 나온다네요."라는 말을 기사님께 들었을 때, 정치적 선진국이라 생각하고 있던 내 나라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짐과 동시에 민낯이 드러난 암담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 와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나보다 더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택시 기사님의 말에 '그러게요.'라는 답밖에 하지 못한 내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계엄은 해제되었고, 여행도 이틀차 저녁에 접어들었다. 후쿠오카 시내 한가운데서 회와 소주를 찾는 아빠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나와 은우는 숙소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그나마 있던 스시집이 휴무임을 확인한 뒤 절망하고 말았다. 지하 쇼핑몰에서 겨우 장어덮밥과 사시미를 추가로 파는 집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의 기분이란...... 한 겨울에 패딩을 벗어젖히고 반팔로 뛰어다녔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전날부터 식사 때마다 아빠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너거 먹이는 거 하나는 잘 먹였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빠와의 여행(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직후부터 내 마음속에 '이제 여행에 아빠는 제외'라는 문장을 새겼다.)이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는 걸 아빠는 과연 알까? 엄마는 딸들의 수고에 "고맙다, 됐다, 재밌다, 맛있다, 충분하다."는 말로 기를 세워 주었고, "그냥 그렇다, 다른 건 없나?, 다 똑같지 뭐."만 얘기하는 아빠에게 나와 동생은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속으로 2박 3일로 일정을 잡은 나에게 무한한 칭찬을 보내며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더 뼈저리게 알게 된 아빠의 기억! 우리의 기억이 맞는 건지, 그의 기억이 맞는 건지. 글쎄, 자기 명의의 빚이 없이 잘 살았다는 남자. 자식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잘 먹이며 키웠다는 남자. 우리의 기억엔 아빠의 빚을 갚느라 퇴직금까지 일부 써야 했던 엄마와 간식거리가 없어 직접 만들어 주던 엄마와 아침마다 밥상을 차려두고 나간 엄마 밖에 없는데...... 왜곡된 그의 기억은 그의 삶에 드넓은 양기의 기운이 넘치는 들판이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나, 그의 등 뒤로 펼쳐진 황량한 사막을 우리는 지금도 걷고 있는 기분이다.

극우파 지지자들과 반공이라는 참호 속에 숨어 들어간 대통령,

자신의 책임은 모두 아내에게 떠 넘기고 그나마 잘 살았다 자부하며 살고 있는 아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씁쓸하고 암담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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