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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May 19. 2024

모모처럼 살고 싶다.

나 혼자 산다를 보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초저녁 할머니파 수면패턴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밤늦게 하는 티브이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다. 요즘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굳이 그 시간을 지켜보지 않아도 재방 삼방 또 유튜브 요약까지 보고 싶은 대로 골라 볼 수 있다. 바삐 사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많은 볼거리들이 쏟아져 나오니 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를 가장한 돈벌이? 요즘 사람들이 쇼츠에 열광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사실은 나도 그런 돈벌이를 해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제 오후 재방송으로 나 혼자 산다를 봤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재방송은 챙겨보는 편이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일까?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할 때가 많다. 어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조연배우인 구성환 씨가 주인공이었다. 잘생긴 배우도 아니고 유명한 배우도 아니다. 소위 말하는 한남동 등등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빌라 꼭대기층 옥상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을 스스로 조율하는 구성환 씨. 배꼽 빠지게 웃다가 마지막 그가 던진 한마디에 가슴 먹먹해짐을 느꼈다. 


'행복해요. 그 누구보다 지금의 자신이 좋아요. 너무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일없는 날은 자기를 위한 최소한의 운동과 강아지를 위한 산책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집중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거대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산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만족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할 것이다. 나는 시간을 분으로 나누어 살았다.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 줄 알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무자비하게 사용했다. 쉼이란 건 사치일 뿐이었다. 아이에게도 그 불편한 시간사용법을 이월시켰다. 아이를 낳기 전엔 '건강하기만 해 다오'였는데 옆집 아이보다 한글을 빨리 깨치길 바랐고 좀 더 칭찬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했다. 아이들에겐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정답을 맞히는 기술만을 가르쳐주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날이 재산이 불어나고 명예가 오르는데 나는 그러지 못할 까봐 전전긍긍했다. 미래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늘 불안했고 늘 걱정이었다. 


쉼을 선택하고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니 모모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도 집도 없는 떠돌이 고아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늘 행복한 아이. 그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기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아이.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음에도 시간의 쳇바퀴 속에서 더욱 힘들어하는 모모의 친구들. 다시 찾은 자기 만의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모모의 친구들을 보며 구성환 씨의 행복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느리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해야 할 일들을 천천히 처리한다. 예전처럼 몇 시까지 이런 개념을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엔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의 아침과 물병을 챙기고 오전 9시 전에 집안일을 끝내고 10시까지 운동을 하고 씻고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굳이 꾸역꾸역 약속을 만들어 만나고 남편의 불평들을 듣느라 몇 시간 전화기에 시달렸다. 그것이 나에겐 강박이 되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해야만 할 일들로 나를 옥죄었다. 그렇게 매일 불편하고 힘들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중산층 가정에 착한 아이들을 가진 평범한 아줌마로 보였겠지만 백조처럼 나는 매일 평온함을 가장한 얼굴로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놓칠까 봐 긴장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은 지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은 전화기가 울릴 까 바짝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더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며칠 전 갑자기 아주 갑자기 불쑥이란 표현이 가장 옳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나가서 목적지 없이 걸었다. 봄바람은 적당했고, 환경관리원들의 손길이 지난 산책로는 깨끗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하늘을 쳐다보고 나무를 쳐다보고 이름 모를 꽃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서 향도 맡았다. 그날의 계획에(처음부터 계획이란 것도 없었다) 전혀 없던 돌발 행동이었지만 그 한 시간이 준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걷다 보니 뛰고 싶어졌다. 힘들어서 다시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나에게 선물했다. 아니 원래 내 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사용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간을 뺏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가사는 까먹었지만 노래도 흥얼거렸다. 누구에게도 상관없는 나만의 시간이다. 헉헉거리면 뛰든 노래를 흥얼거리든 말이다.


이제는 인스턴트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계란을 품어볼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데 우리 아이도?라는 생각이 모모를 괴롭히던 회색신사들의 유혹처럼 매일같이 다가온다. 하지만, 모모처럼 휘돌리지 않아야지. 자기만의 시간의 꽃을 가진 아이들에게 그 꽃을 빼앗을 권리는 나에게 없다. 


나부터 모모처럼 나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경청으로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내 시간을 찾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 오늘의 나를 가혹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가혹한 시간 후에 맞이한 미래에 또 가혹한 오늘이 있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미래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가혹한 오늘을 또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빠듯한 하루를 살아야 잘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야지만 그렇게 아등바등했던 것들이 실은 그렇게 내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처럼 쉽지 않다. 잃고 나야 보이는 게 있다. 내가 목표했던 삶을 건강하게 이루고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욕심 없는 사람이 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만족을 모르는 특성을 가졌으니까 말이다. 좋은 집과 좋은 차, 명예와 돈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웃을지도 모른다. 좋은 집, 좋은 차, 명예와 돈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나 역시도 바라는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들만 쫒으며 살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나 역시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 회색 신사들은 내 주변에서 아직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시가(담배,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들의 목숨줄이다)가 내 시간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내 행복은 잿빛으로 바뀌어 버릴 것이라는 걸 매일 생각하고 살아가려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유튜브와 숏폼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여유 있는 오늘을 만들어 주고 싶다. 지금도 회색신사들의 유혹과 모모의 다정함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에게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힘을 주면서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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