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도 절정 나의 에고도 절정
사십 대에 겪는 사춘기의 절정! 매일매일 새로운 나를 찾아다니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깜짝깜짝 놀라는 일상의 연속이다. 이걸 내 십 대, 그 찬란하던 시절에 했더라면 내가 지금쯤은 오은영 박사님 바짓가랑이 그 어디쯤은 가 있을지도 모를 텐데. 참, 아쉽기가 그지없다.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아닌 듯한 나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엄청난 연습과 나름의 성찰과 또한 깊은 한숨이 동반되는 일이긴 하지만, 새삼 나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왠지 뿌듯했었다. 뿌듯했었단 말이다! 그 노무 파송송만 아니었다면!! 파송송!!! 계란탁!! 그 파송송 말이다.
장맛비가 시작되는 주말, 큰 아이까지 집에 와서 모처럼 5 총사 주말 쉼 모드로 들어가는 평화로운 정오였다. 나는 [사람을 얻는 지혜]를 필사 중이었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인생을 깨우치고 있던 그때, 내 고막에 나의 정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가 슝~~ 지나간다.
"끼리도"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난닝구에 빤스차림의 남편이 안성**하나를 주방 위로 올려두고는 쌩~~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 얼마든지 끼리주지 그까이꺼!' 참음과 내려놓음이 조만간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는 내가 아니던가~정확한 물 계량과 정확한 타이밍! 꼬들에서 완전으로 넘어가는 그 어디쯤인 그의 취향에 맞게 계란까지 투하해서 보기 좋은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배달했다.
그런데, 라면을 한 젓가락 들던 남편이
"파는 안 넣었나? 안성**은 파가 생명인데? 맛 때가리 없구로."
인상을 확 구기며 말하는데 순간 피가 거꾸로 솟으면서 내 입에서 욕이 한발떼기(많이) 나가려는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옴~~~~~'을 읊조리며 입을 닫아 버렸다. 평소 같으면 나도 다다다 했어야 하는데 내가 조용하자 남편도 내 뒤에 그려진 옴의 아우라가 느껴진 것인지 입 닥치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서 [사람을 얻는 지혜]를 계속 필사했다.
'현명한 의사는 처방할 때와 그대로 둘 때를 구분한다. 내버려 두는 기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큰 파도가 칠 때는 이 기술이 더 필요하다' 마침 이 문구를 필사하며 내 무릎을 탁 쳤다.
'현자이시여~ 그대의 가르침이 또 한 번 우리 집안의 평화를 살리셨구려!'
말 끝마다 불평인 남편에게 나의 받아침은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버려 두면 스스로 심했다는 걸 알 텐데 어쩌면 나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주 나의 대나무숲 병원 상담시간이었다. 선생님의 반가운 미소와 친절함에 사르르 마음이 녹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나의 변화와 생각들을 주절주절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편분이랑은 요즘 어떠세요?"
"괜찮은 거 같아요. 그동안 사소한 트러블도 없었고요. 늘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했었거든요. 나도 못 바꾸면서 남을 바꾸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더라고요. 그냥 그런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지나가니까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인정하면 되는 것을 그동안은 그러지 못했었나 봐요."
"아이고, **님! 그게 바로 자기 객관화입니다. 잘하고 계시네요. 하지만, 그게 지나쳐서 자기 비하가 되면 안 됩니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파이팅입니다!"
'아다마다요. 선생님. 제가 자기 비하에서 지금 자기 객관화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중이거든요.'
파가 들어있지 않은 라면에 잠시 분노한 남편은 내가 아무 말 없이 앉아서 책만 보니까 슬슬 눈치를 보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파 없어도 맛있더라며.. 이노무 인간을....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