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써봤습니다. 나 따위가 말이지요.
지난 주말, 그러니까 오늘로부터 딱 일주일 전, 친정부모님이랑 서울에 사는 사촌 언니 딸 결혼식을 다녀왔다. 얼리어답터임을 자랑하는 엄마인데 기차 타는 법을 모르겠다는 귀여운 엄살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의 큰 딸인 나는 서울, 그것도 청담동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말이다.
30여 년 만에 만난 사촌 오빠도, 사촌 언니도 반가웠고 굳이 촌수를 따지면 머리 아픈 어르신들과 조카들도 만났다. 아이고, '네가 **딸내미가? 어쩌고 저쩌고~.' 나 살기 바빠서 집안 대소사 참석을 많이 못했더니 수십 년 만에 만난 어른들도 계시고, 내 또래 사촌들이 이미 다 큰 아들들과 와서 인사시키는데 신기하고 반갑고 여하튼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 많은 곳에 다녀오면 진 빠지는 스타일이라 내려오는 기차에서는 등받이에 기대어 음악이나 들으며 쉬고 싶었다. 기차의 낭만이 있지 않나.
극 I 성향인 나와 달리 극 ㅌ성향(나는 a형, 엄마는 O형. 굳이 이런 걸로 구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 와닿기는 한다)인 엄마는 딸내미와의 첫 기차 여행에 신이 나, 과거를 소환해 쉴 새 없이 추억얘기 하느라 여념이 없고, 결혼식장에서 한 잔 하신 아부지는 어느새 한숨 주무시는 중이다. 엄마의 말에 강약을 넣은 추임새와 적당한 덧붙이기를 하면서 엄마 이야기를 듣다가, 기차 안 모니터로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문학상 공모전! 언젠가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엄두가 안 나서 시도조차 못해봤는데, 반복해서 나오는 광고가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검색했다. 그런데, 날짜가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심지어, 200자 원고지 800장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보다, 원고지 800장 감이 안 온다. 급하게 한글파일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거의 A4용지 100장 이상을 써야 800장이 나올까 말까... 하... 일주일에 이걸..
다음에 지원해야겠다 생각하다가, 시작이나 해보자. 마감 일자까지 혹시 다 못쓰면 다듬어서 여기저기 출판사에 기웃이라도 거려보지 뭐. 다 퇴짜 맞겠지만. 시작이 반이니까. 누구나 처음은 있다.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월요일부터 쓰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쓰기 시작하니까 그다음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더해져 꽤 많이 썼다 싶었다. 내가 읽어도 유치뽕짝한 이야기이고, 이걸 다른 사람이 읽으면 얼마나 비웃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썼다. 그 와중에 남편은 알타리 김치가 먹고 싶다는 타령을 해대고, 굳이 시장까지 가서 사 오고 절이고.. 그 시간이면 두 장은 더 썼을 텐데. 그렇게 아까운 시간들이 계속 흘렀다. 어깨와 허리에 파스까지 붙여가며, 엉덩이게 땀띠가 날 정도로 집중, 또 집중했다. 깊은 지식이 필요한 주제를 얕은 지식으로 쓰려니 한계에 계속 부딪혔지만, 나 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거라는 자기 체면을 걸어 가면서 말이다.
목요일, 몇 장이나 되나 확인해 봤다. 원고지 분량으로 250장. 포기할까?
엔도르핀 친구, 나의 유일한 브런치 지인 독자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되든 안 되든 해보란다. 어젯밤 12시가 마감이었는데 밤 11시 45분까지 쓰고, '에라 모르겠다' 홈페이지에서 지원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원고지 분량 모르겠다. 그 이후 세보지 않았다. 아니, 감으로는 알지만 그냥 그냥 쓴 데 까지 써서 보내버렸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써서 그런지, 기대도 미련도 없다. 내년에는 제대로 하면 되지 뭐. 스스로 다독이며 잘했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마지막으로 12시 5분 전에 그래도 혹시나 지원한 게 잘못됐을까 봐 온라인 지원확인을 했는데 '***님, 이미 지원되어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보자, 가슴에서 묘한 몽글거림이 올라왔다. 일주일 만에 장편소설(?) 하나를 그래도 어찌어찌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이었다. 완성도? 내가 쓴 글의 수준? 그런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냥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제대로 한 번 해 볼 수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도 생겼다.
조금씩 이제 써보려고 한다. 모이고 쌓이면 뭐라도 되겠지? 중편하나, 장편하나. 이미 두 번을 썼으니까 세 번째는 이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면서 말이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 내 수준이 바닥이라 글도 영 마음에 안 든다. 쓸 때는 우와, 대작스멜~이었는데 다 쓰고 보니 유치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인생 뭐 있나? 나이 들어하고 싶은 거 하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많은 걸 배워가는 인생이다. 엄마와의 기차여행도 이제는 귀찮음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새삼, 하루가 짧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어제 대충 보낸 시간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일이 있으니까, 아쉽지만 또 아쉽지 않다. 비도 오고, 읽던 사피엔스나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