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열정아줌마

한서장학재단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지자체와 연결이 되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하나 둘 입소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온 이유는 다양했다. 가정불화가 제일 많았고, 강압적인 부모, 그리고, 다른 자녀들과의 비교, 학교 내 따돌림, 사춘기를 이해 못 하는 부모와의 갈등.... 아이들은 그냥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조용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길 바랐는데 부모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아이들을 이해한답시고 가르치고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또래들과 음지로 음지로 모여들고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일들이 반복되는 모양새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청소년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소위 말하는 문제아 같은데 실상은 아직도 어린아이들 같이 순수하고 착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쉼터 같은 곳에 오지 않는 아이들은 이미 범죄나 다른 조직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갱생의 의지따윈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한참 꿈 많고 까르르거릴 나이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관심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고민을 갖게 만들었다. 그 아이들도 우리의 아이들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 나이에 맞는 꿈을 꾸고 올바르게 성장하게 도울 수 있을지 나에겐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서른여섯이 된 3월, 우리는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몰웨딩으로 각자의 가족과 친한 지인 몇 분만 모시고 말이다. 최 부장은 마치 자기 딸내미 시집보내는 사람처럼 꺼이꺼이 울었고 말이다. 아놔, 인정스런 양반.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나는 그해 9월 말, 딸을 낳았다.

풍선이 두둥실 떠다닌 그날을 기억하시는가? 그날은 서른다섯 살 동안 응축된 남녀의 감정이 한 번에 터져서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밤이 되었고, 그렇게 한방이가 생겼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뜨겁다.

한강뷰 집은 처분하고, 서울외곽에 조그만 전원주택을 샀다. 그리고, 데면데면하던 친정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를 맡아 키워주시기로 했다. 아이 덕분인지 두 분은 웃음이 많아지셨고, 스페인에서 잠시 다니러 오신 시부모님까지 기이한 동거생활이 한참 이어졌다.

한 배우는 지금도 인기 절정의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생겼고, 자기가 벌린 일에 대한 자금줄의 역할도 착실히 해야만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착하디 착한 사람이다. 이런 행복을 내가 느껴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하다. 그와 동시에 아직 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이모이자 엄마가 되어 주려고 한다. 아이들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렇게 순순하고 맑은 아이들이 왜? 라는 의문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그들이 왜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지, 그리고 부모들은 왜 그 아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가정의 울타리에서 사랑받고 학교 다니며 저마다의 꿈을 갖는 아주 평범한 일상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과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 성장하고 자신들의 두 발로 우뚝 설 수 있게 도울 것이다. 나에겐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다. "한서인 독립시키기 프로젝트" 우리 쉼터에 입소한 이상 내 책임이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가정은 되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친구이자 멘토는 되어 줄 수 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또 바뀌겠지? 나는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인가 보다.


"얘들아, 우리 원영적 사고를 해보자. 집은 나왔지만 머물데가 있고, 학교는 자퇴했지만, 배울 곳이 있잖아? 그리고, 나같은 이모도 있고 말이야. 오히려 좋지 않아?"


원영적사고

일반적인 긍정적 사고를 넘어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초월적인 긍정적 사고로 치환하는 방식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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