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과 맞바꾼 5만 원

아들의 수학여행 흑역사

by 열정아줌마

부산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메카는 단연코 에버랜드다. 우리 집 1,2,3번 모두 초등 수학여행으로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과학관도 가고 민속촌도 간다. 하지만, 그들은 들러리에 불과할 뿐, 에버랜드에 도착해서야 진정한 수학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도권에 사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여행 적게 다녔다고 말 못 하는 우리 가족도 에버랜드는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었다. 그래서, 부산시 교육 관계자분들께 심심찮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집 3번, 드디어 마지막 순번도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돌아왔다. 오전 10시에 입장해서 오후 9시가 넘을 때까지 에버랜드에서 놀며 뽕을 뽑았으니 엄마 된 심정 또한 고무되고 감격스럽기만 하다. 놀이기구 타느라 잊어버린 가족이 생각났는지, 타오르는 불꽃놀이에 심취해서인지 동영상까지 찍어가며 아들은 아쉬운 수학여행의 마지막 이벤트를 즐기며 단톡방에 여러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에버랜드 페스티벌 아들램 직찍


KakaoTalk_20240925_190005040.jpg

놀이기구를 열개나 탔으며, 자기 용돈 카드로 인형은 샀지만 아껴 쓰고 현금으로 가져간 돈은 하나도 안 썼다며 자랑까지 한다. 첫 아이는 머리에 화관을 얹고 오느라 탕진하고, 둘째는 거의 안 쓰고 왔었는데, 적당히 쓰고 적당히 남긴 막내가 기특하려던 찰나, 아들에게 개인톡이 왔다.


"엄마."

불안하다.

"응, 왜?"

"제가 에버랜드 식당에 가방을 놓고 왔거든요?"

"응?"

"그런데, 누가 제 돈 5만 원만 훔쳐 갔어요."

"가방은 찾았어?"

"아니요, 택배로 온대요."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들고 지친 나머지(본인 말로는) 밥 먹고 나오는 길에 가방을 두고 와버렸는데 양심에 털 난 사람이 자기 돈만 쏙 빼서 분실물 보관센터에 맡긴 것 같단다(이 또한 본인 말이다). 가방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달래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 저학년 때도 학교에 그리 가방을 두고 다니더니, 하하하. 할 말이 없다. 다음 날 일정이 하루 남은 터라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않고 수학여행 후 도착할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목이 다 쉬어서는 계속 돈 가져간 양심에 털 난 사람 얘기만 한다.

"아들아, 네가 가방을 놓고 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텐데? 본인 소지품은 본인이 챙기는 거지. 그게 먼저이지 않을까?"

이노무시키, 대답은 안 하고 코를 찡긋찡긋거린다(억울하면 나오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문디 찌슥...


'야 이노무 시키야. 초등학교 6학년이나 돼가지고 가방도 못 챙기고 뭘 잘했다고 으이??!!!!!!' 목구녕까지 차오르는 말을 억지로 넘기며 반응을 살폈다. 왜 대답이 없냐는 식의 눈치를 보내니 목이 아파 말을 못한다는 시늉을 한다. '요것봐라. 머리 쓰네. 아놔....'

"이미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다음부턴 자기 물건 잘 챙겨. 5만 원짜리 수업 들었네. 아들!"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치킨이 먹고 싶다는 녀석. 착불 택배비 5천원까지. 5만 5천원의 손실을 보았지만, 그만큼 배운게 있다면 좋겠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해놓고 남 탓을 하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하는지, 저 정도에서 끝내는 게 맞았는지..... 아이 키우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지금 생각하면 기저귀갈 때가, 아니 뱃속에 있었을 때가 제일 편했던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탄생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