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수학여행 흑역사
부산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메카는 단연코 에버랜드다. 우리 집 1,2,3번 모두 초등 수학여행으로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과학관도 가고 민속촌도 간다. 하지만, 그들은 들러리에 불과할 뿐, 에버랜드에 도착해서야 진정한 수학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도권에 사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여행 적게 다녔다고 말 못 하는 우리 가족도 에버랜드는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었다. 그래서, 부산시 교육 관계자분들께 심심찮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집 3번, 드디어 마지막 순번도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돌아왔다. 오전 10시에 입장해서 오후 9시가 넘을 때까지 에버랜드에서 놀며 뽕을 뽑았으니 엄마 된 심정 또한 고무되고 감격스럽기만 하다. 놀이기구 타느라 잊어버린 가족이 생각났는지, 타오르는 불꽃놀이에 심취해서인지 동영상까지 찍어가며 아들은 아쉬운 수학여행의 마지막 이벤트를 즐기며 단톡방에 여러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놀이기구를 열개나 탔으며, 자기 용돈 카드로 인형은 샀지만 아껴 쓰고 현금으로 가져간 돈은 하나도 안 썼다며 자랑까지 한다. 첫 아이는 머리에 화관을 얹고 오느라 탕진하고, 둘째는 거의 안 쓰고 왔었는데, 적당히 쓰고 적당히 남긴 막내가 기특하려던 찰나, 아들에게 개인톡이 왔다.
"엄마."
불안하다.
"응, 왜?"
"제가 에버랜드 식당에 가방을 놓고 왔거든요?"
"응?"
"그런데, 누가 제 돈 5만 원만 훔쳐 갔어요."
"가방은 찾았어?"
"아니요, 택배로 온대요."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들고 지친 나머지(본인 말로는) 밥 먹고 나오는 길에 가방을 두고 와버렸는데 양심에 털 난 사람이 자기 돈만 쏙 빼서 분실물 보관센터에 맡긴 것 같단다(이 또한 본인 말이다). 가방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달래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 저학년 때도 학교에 그리 가방을 두고 다니더니, 하하하. 할 말이 없다. 다음 날 일정이 하루 남은 터라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않고 수학여행 후 도착할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목이 다 쉬어서는 계속 돈 가져간 양심에 털 난 사람 얘기만 한다.
"아들아, 네가 가방을 놓고 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텐데? 본인 소지품은 본인이 챙기는 거지. 그게 먼저이지 않을까?"
이노무시키, 대답은 안 하고 코를 찡긋찡긋거린다(억울하면 나오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문디 찌슥...
'야 이노무 시키야. 초등학교 6학년이나 돼가지고 가방도 못 챙기고 뭘 잘했다고 으이??!!!!!!' 목구녕까지 차오르는 말을 억지로 넘기며 반응을 살폈다. 왜 대답이 없냐는 식의 눈치를 보내니 목이 아파 말을 못한다는 시늉을 한다. '요것봐라. 머리 쓰네. 아놔....'
"이미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다음부턴 자기 물건 잘 챙겨. 5만 원짜리 수업 들었네. 아들!"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치킨이 먹고 싶다는 녀석. 착불 택배비 5천원까지. 5만 5천원의 손실을 보았지만, 그만큼 배운게 있다면 좋겠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해놓고 남 탓을 하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하는지, 저 정도에서 끝내는 게 맞았는지..... 아이 키우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지금 생각하면 기저귀갈 때가, 아니 뱃속에 있었을 때가 제일 편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