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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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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Feb 24. 2022

저는 K장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녀로 산다는 것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시아버님의 첫 질문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냐였다. 

부모님, 여동생 둘입니다. 했더니 장녀냐던 아버님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첫인사드리는 자리라 긴장감에 다리에 쥐 나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고 앉아서는 


'우리 집에 아들이 없어서 그러시나?'

우리 엄마나 할 법만 신세한탄에 걱정만 하고 있었지 아버님의 그 물음이 기분 좋은 물음이었음을 그땐 알 턱이 없었다. 


큰 아이가 4살 때였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버님이 탈장 수술을 하느라 3박 4일간 입원을 하신 적이 있다. 나와 남편의 직장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병원이라 나는 점심시간마다 아버님 병실에 가서 간호 중이던 어머니와 점심을 먹었다. 퇴근하면서도 아버님 얼굴을 뵙고 가야 마음이 놓여서 퇴원하실 때까지 매일 찾아뵈었다. 퇴원하시던 날 반차를 내고 퇴원수속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신다.


"아버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다"

"불편하신데 있으면 퇴원 전에 말씀하셔야 돼요"


"그게 아니고, 큰 어미는 어째 병문안 한 번을 안 온다"

"차멀미가 심하다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서 둘째 며느리가 왔잖아요"

최대한 서운한 마음이 덜 들도록 너스레를 떨어보았지만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하셨는지 얼굴 표정이 안 좋으시다.

"아무리 그래도 참나.. 이러니 첫째랑 막내랑 표 난다 하지"


괜히 머쓱해져서 퇴원 수속하는 척하며 병실을 잠시 벗어났다. 멀미가 심해서 병원까지 도저히 올 수가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었는데 타 지역도 아니고 차로 30분이면 오는 거리에서 차멀미 핑계는 나도 사실 납득하기 힘든 일이긴 했다. 뒤늦게 알았는데 아버님이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 생일잔치를 친정식구들만 불러서 한 모양이다. 우연히 알게 되신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생각 없이 전달하셨단다. 병문안을 다녀갔더라면 서운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오히려 아이 생일이라고 용돈을 주셨을 거다. 나도 기분 상하긴 마찬가지. 


우리 형님은 단 한 번도 혼자서 시댁과 병원을 온 적이 없다. 두 분이 번갈아 교통사고에 항암에 수차례 입원생활을 하셨지만, 아주버님과 함께 그것도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먼 친척 병문안하듯 몇 번 온 게 다였다. 내가 매일 두 분을 모시고 다닌 거에 비하면 너무 편안하게 말이다. 아 맞다. 지금 동서지간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지.. 아차차..


나중에 제법 시간이 흘러서 첫인사드리던 날 내가 장녀라는 소리에 너무 반가웠다는 말을 해주셨다. 첫인상도 좋았는데(아버님의 친모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하셨다) 거기에 장녀라니. 그리고 본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사는 동안 증명해 주었다며 감사해하셨다.


"작은 어미는 장녀여서 주변을 챙길 줄도 알고 책임감도 강한데 큰 어미는 막내라 받는 거만 잘하니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있나" 


종종 속 얘기를 나에게 하셨는데 단 한 번도 둘 다 있는 자리에서 비교를 하시거나 서운한 티를 내신 적이 없으니 우리 형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지금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얘기만으로 나는 아주 좋은 며느리고 우리 형님은 그렇지 못한 며느리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입장이란 것이 있으니 이 글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관점이란 걸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에피소드가 엄청나게 많았고, 내 입장에서 서러웠던 일들만 열거하라 해도 일주일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니 '그랬구나 이 여자가 힘들었구나' 그냥 봐 넘어가 주시길. 세상에 모든 막내인 며느리들이 나를 고깝게 보는 건 원치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세 딸 중 장녀다. 

요샛말로 대한민국 장녀를 K장녀라 한다 하니 일단 조건엔 부합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가족관계 증명서상 우리 엄마 아빠의 장녀임에도 틀림이 없다. 


어릴 때부터 너는 큰딸이니까 동생들 잘 챙기고 엄마 아빠한테 무슨 일 있으면 네가 부모랑 마찬가지다 명심해라 소리를 엉덩이 붙일 때마다 듣고 자랐다. 책임감이 강했어야 함은 당연지사다. 동생들이 잘못하는 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네가 공부를 잘해야 동생들이 본받고 잘하지란 말도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네가 잘해야 한다는 얘기는 지금도 엄마의 단골 멘트다. 항상 네가 잘되어야 동생들도 잘된다. 어쩌고 저쩌고.. 


예전에 못살던 시절에 큰 딸은 살림 밑천이었다. 큰 딸이 공부를 포기하고 벌어 온 돈으로 온 가족 먹고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귀남이와 후남이. 남자라는 이유로 귀남이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후남이는 귀남이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론, 이 드라마는 남아선호 사상에 더 근접한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남아선호 사상과 장녀는 얽히고설켜 있으니 굳이 나누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 딸이 살림 밑천이 되어서 동생들을 성공시킨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시대를 보내온 우리네 어른들의 수많은 기대들이 K장녀를 대거 탄생시킨 게 아닐까? 그 이면에 성공을 강요당한 귀남이들의 애로사항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나는 시대를 용케 잘 비켜서 태어난 덕분에 우리 집의 살림 밑천이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았고, 장녀라 더 많은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 해도 장녀라는 타이틀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 그 꼬리표는 보이지 않는 타투처럼 내 몸에 새겨져 버렸다. 어릴 때부터 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도록 남는 법이다.


나는 우리 큰 딸아이에게 너는 장녀니까 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끔 남편이 아이에게 K장녀가 되라고 요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정강이를 걷어차버리고 싶은걸 겨우 참는다. 


장녀가 아닌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인 아이로 키워보자고 남편님아~

당신이 장녀라는 프레임의 무게를 아냐 말이야~!!! 


쇼윈도 동서지간입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한 안부를 물으며 지내요.

언젠가는 서운했던 마음을 마주 앉아 얘기하고 털어내버리고 싶어요.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 하지만.

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불편하신 분들은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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