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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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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Aug 23. 2023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

사랑과 전쟁 #1

"니 혹시 아는 변호사 없나?"

"뭔 변호사?"

"이혼 전문 변호사말이야"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남편이랑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다. 덜컥 겁부터 났기에 어떤 어조로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려졌다. 


"왜? 어? 왜!!!?????"


"내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아..... 근데 누구?"

"우리 시엄마"


헐, 이건 또 무슨 소리고.. 뭔데 시엄마가 이혼 전문 변호사가 필요한 건지 갑작스레 온 전화에 정신이 없다.


사실, 이 친구의 시댁은 총체적으로 문제적 집안이긴 하다. 어쩌면 예상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현실감이 좀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에이, 아무리 그러한들, 설마 그런 일이야 생기겠어?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일흔을 넘긴 분들의 갑작스러운 이혼소송이라니 이게 머선 일이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일단 집안의 계보를 보자 하니 누나 둘에 아들 하나. 내 친구가 맏며느리이자 외동며느리이다. 결혼 초기부터 심상찮긴 했다. 일단 남편은 시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고 그 시아버지는 100억 자산가로 알려진 분이다. 자만추를 추구하던 친구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한다며 소개해준다고 만났다.  너무 친구 이상형이 아니라 뭐라고?? 야?? 이거 맞아?라고 얘기했을 정도였다. 결혼이 늦어지니 조바심이 난 것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돈 많은 집안에 착한 아들이라 한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 뭐.. 아, 내가 결혼할 때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으니 남녀의 문제는 그들만 아는 것! 나도 뭐 다른 말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기기에 사이좋은 부부구나 화목 단란하게 사는 줄만 알았는데 그 이후 계속 삐그덕 삐그덕.. 결혼생활이란 그런 것이기에 남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맞춰가는 중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결혼 생활 중인 걸 알게 된 건 친구의 엄마가 갑작스러운 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였다.


"니 업고 다니다가 느그 외할매가 병나서 죽었다이가"


장례식장에서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아연질색했는지 모른다. 유치원생인 아이한테 업어 키운 외할머니가 본인 때문에 죽었다니 아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분을 보며 악인이 저런 거구나 라고 느꼈던 거 같다. 학교 선생이던 친구 대신에 친정 엄마가 매일같이 업고 친정아버지 공장으로 출근하면서 봐주던 아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 아이 앞에서 할 말인지 피가 거꾸로 솟을 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의 도시락을 책임져 주셨던 어머니다. 우리에게 제2의 어머니였고 사랑이 넘치셨던 분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암선고도 놀라웠고 몇 달 만에 유명을 달리하신 것도 우리에겐 꽤나 큰 충격이었는데 그런 분에게 그 시부모는 정말 냉혹할 정도로 인간적인 감정 표현이 없었다. 사람이면 저럴 수 없는데 그들은 무서우리만치 사람 같지 않았다.


큰 아이가 우리 막내랑 동갑이니 벌써 11년이 흘렀다. 내 친구는 그 집안과 엮이면서 엄마도 잃고 최근 동생도 잃었다. 오빠도 하던 사업이 망해버렸고 아버지 역시 잘되던 사업장을 닫았다. 친구 앞에서 말하진 못하지만 또, 굳이 끼워 맞추고 싶지도 않지만, 그 집안 때문이라고 악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착한 사람들한테 겹겹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내 마음이라도 달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진짜 악인과 엮이는 바람에 착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쁜 일이 생겼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시아버지는 말했다시피 100억 부자다. 나 같은 사람은 감히 감도 안 잡히는 금액이지만 변호사 추산 드러나는 금액만 100억이라 하니 거짓은 아닐 테고, 그런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친자식 맞음) 1년이 되기 전에 해고시키고 또 재입사시키고 또 해고시키기를 몇 년째 반복했다. '너 따위에게 퇴직금을 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건 악덕고용주가 아빠인 실화탐사대에나 나올 뻔한 얘기다.


그렇게 아들을 길들이며 며느리에게도 '니가 조금이라도 잘 못하면 내 재산은 1도 못 받을 거'라며 결혼 초부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친구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애 하나니 그냥 이혼하라고 그게 맞는 거 같다고 친구들이 나서서 이혼을 권유했을 정도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둘째 딸이 찾아왔다.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가 어쨌든 잘 버티고 견디고 옳은 선택을 하길 기다리는 거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났고, 작년 그 친구의 동생 장례식장에서 본 이후 서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잘 지내겠거니 했는데 시부모의 이혼 소송이라니..


친구의 남편은 현재 아버지 회사에서 쫓겨나 백수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설득해 아버지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는 남편과 잘 지내고 있다. 불행이 그들을 더 단단히 엮어 준 모양이다.


사실 시아버지는 회사 내부 직원과 내연관계를 오랫동안 맺고 있었고, 심지어 그 내연녀에게 40억에 달하는 근저당을 설정해 준 상태이다. 시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색조차 못하고 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용증명을 보내면 내연녀에게 설정해 준 근저당을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건 협박뿐. 그 내연녀가 회사에 실질적인 대표나 마찬가지인 상태라 그 내연녀 입김으로 남편도 회사에서 잘렸다.


미운 시어머니지만 권리는 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미에서 부부가 합심을 한 거다. 일단 시어머니를 안전하게 다른 곳으로 모시고 현재 대형로펌을 통해 소송은 진행 중이고 그 시아버지는 매일 그들을 찾아와 소송 취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 시아버지는 지금 전립선 암 투병 중이다. 죽을 때가 되면 철이 든다는데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 내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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