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척이 답이다
"여보야, 저기 **씨 아니가? 근데 옆에 저 사람은 그 사람인데?"
"어디? 그러네.. 볼일 보러 왔겠지."
애써 태연하게 둘러서 말했다. 동네 친구인 **가 근처 가게 사장님이랑 친구 차에서 내려서 어디론가 향해 가는 걸 남편이 보고는 무슨 사이냐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돌려 말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만 본거면 입 닫고 모른 척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남편도 두 번째라며 처음은 그냥 일 때문에 만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다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굳이 옆 동네에서 따로 둘만 만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은데 일 때문이라 하기에도 다소 억지스럽고 동네 후미진 곳에 주차하고 급히 옮기는 발걸음이 수상하기 이를 데가 없다. 당당하다고 하기엔 주위를 너무 살피는 눈치여서 오히려 더 어색함이 느껴졌다.
"봐봐라.. 주변 두리번거리는 게 수상하잖아"
"에이, 주차하고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겠지. 동네니까 차 빼라 할까 봐"
"두둔하는 게 수상한데? 니 뭐 아는 거 없나?"
"내가 우찌 아노. 요새 만나지도 못했다. 여보가 더 잘 알잖아."
사실 내가 먼저 그들을 목격했고 남편은 모르고 지나가길 바랐는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닌 남편 눈에 딱 보였나 보다. 거기다가 대놓고 맞나 맞나 호들갑 떨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일 때문에 만나겠지라며 말을 돌렸다. 정말 순수하게 일 때문에 만나서 밥 한 끼 하려고 가던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인들에게도 두 사람의 목격담을 몇 번이나 들었고 나 역시도 사실 의심하고 있었던 걸 애써 부인하려니 어색한 말투가 나온 모양이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며 계속 묻는데 난감했다. 친하게 지낸 터라 괜히 잘못 대답하면 애꿎게 나한테도 의심의 눈초리를 줄까 봐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몇 년 전 동네 언니들과 밤마실을 다니면서 근처 유흥가에 있는 나이트를 한참 다녔었다. 친정엄마가 자주 아이들을 봐주셨고 남편도 늘 늦게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까지는 자유롭게 밤외출이 가능했던 친구였다. 그때만 해도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고 아이 등원 때문에 아침엔 거의 매일 만난 사이라 그녀가 들려주는 나이트 스토리는 꽤나 흥미진진했다. 나는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나한테는 거의 모든 일들을 털어놨었고 그들과의 통화도 내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했던 터라 소위 말하는 외간 남자와의 썸 스토리는 일일연속극 보는 것 같았다. 나 같음 엄두도 못 낼 텐데 대담하게 **언니 또는 **엄마로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고 한동안 만남을 지속했던 걸 알고 있던 터라 색안경이 껴지는 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지나간 이야기고 그 이후의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일절 알고 싶지도 않았고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슬아슬한 선을 이어가는 모습이 탐탁지도 않았다. 그녀가 그런 만남을 이어가는 게 나는 도저히 이해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즈음부터 그 친구에게 전화하는 횟수를 줄였다. 끼리끼리라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와 애써 거리를 두기로 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거다. 그렇다고 십여 년 세월이 갑자기 무 자르듯 끊어지는 건 아니라서 간단한 안부 묻기와 어느 정도의 경조사만 챙기는 선에서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유교 사상에 찌든 조선 시대도 아니고 사랑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의외로 사랑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면 불륜을 저지를 이유가 없지 않나?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변한 사랑이라면 마침표도 제대로 찍어야 한다. 최소한의 상대방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말이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새로운 사랑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 입장이라면 그 정도의 책임감은 제발 가져줬으면 좋겠다.
들키지 않는 불륜은 없다. 언젠가는 들킨다. 불같이 타오른 사랑은 그만큼 꺼지는 것도 빠르다. 제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만은 하지 않기를.. 괜한 오지랖으로 오늘도 할 말이 많아지는 아줌마다.
사진 © nathan_mcb,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