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적인 욕망덩어리 아줌마
시어머니는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다. 기도하러 산으로 바다로 다니셨고 그 수발은 내 몫이었다. 수발이래 봐야 운전기사에 짐꾼 정도지만 그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진짜 신이 존재하나?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 자연스레 무속신앙에 빠져들었다. 내가 미신쟁이가 된 건 전적으로 용하지 못한 시어머니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용한 점쟁이였다면 여기저기 찾아다닐 일은 없었을 텐데 단 한 번도 맞춘 적이 없다. 집안에 법당을 모시고는 있지만 점사는 보지 않으셔서 감이 떨어지셨나?
큰아이가 아들이라고 낳는 날까지 그렇게 장담을 하시더니 머쓱해하며 아들 같은 딸이라고 말을 돌린다. 게다가 동생의 전남편과 찰떡궁합이라더니 1년도 안 돼서 이혼해 버렸다. 그렇게 신통치 않다 보니 용하다는 곳을 더 찾아 헤맨 건지도 모른다. (지가 궁금해 다녀놓곤 탓하는 꼴이라니..)
동네 아줌마들과 월례행사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저기 신내림 받은 용한 분들을 찾아다녔다. 어쩌다 부적이라도 하나 받아 온 날엔 남편 지갑에 몰래 넣어두고는 마치 장한 일을 한 것처럼 으쓱하기도 했다.
여차저차 용한 곳을 찾아다니던 중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을 발견했다. 그 후 십여 년 가까이 매년 초만 되면 신수를 보러 다닐 정도로 단골을 맺고 왕래를 했다. 어쩌면 정신과 상담대신 찾았던 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내 맘속에 있는 걸 털어놓고 오는 게 좋았다. 잠시나마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며 희망이라는 빛이 한 줄기 보였다고나 할까? 마치 나만의 대나무숲인양 모든 걸 털어놓고 오면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 웬만한 심리상담사를 능가할 정도로 경청해 주고 해답을 알려주었다. 물론 비용이 제법 발생하는 유료서비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분도 나이가 드니 영 신통찮다. 조금씩 신발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그러던 차에 블로그에서 용하다고 해서 찾아 간 새로운 점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신점은 그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환멸을 느꼈다고 해야 옳다. 들어서자마자 기승전 굿이다. 조상님이 노하셔서 노기를 풀어줘야 한단다. 이런 뭔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는지. 디립다 굿을 하란다. 천만 원... 허걱....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블로그 마지막에 [소정의 상품을 제공받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도 블로그를 하지만 이런 게 싫어서 내돈내산만 올리는데 끝까지 못 보고 간 내 탓이다.
5만 원만 날리고 와서 지나간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갔던 수많은 점집들에서 했던 말이 과연 다 맞았던가? 찝찝한 뭔가 때문에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내 성질머리 때문에 스스로 찾아다닌 점집에 다녀와도 그때뿐이었다는 걸 그 순간 강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결국 나의 불안함을 그들을 통해 인정받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신점 받을 때의 느낌을 대충 정리를 해보니 이렇다.
" 옛날 어른 집에 감나무가 있었어?"
" 아니요"
" 천만다행인 줄 알아. 있었음 대가 끊겼어"
은근슬쩍 취조하고 그 내용을 추리해서 갖다 붙인 느낌? 그러면서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앞으로 좋아질 거야 또는 지금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더 나빠지니 부적을 쓰든 기도비라도 내고 기도라도 하라'는 식이었던 같다.
물론, 용하게 미래를 보고 점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그때 들었던 말들 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는 걸 보면 그런 분을 만나는 것 또한 로또 당첨 확률만큼이나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재미 삼아 봤던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속상했다. 차라리 오늘의 운세나 볼 걸.. 들인 돈만 해도 아이고 그 돈으로 주식이나 사둘 것을 후회가 막심이다.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다 보니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타로에 꽂혀서 관련된 책을 읽고는 미친 듯이 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쉽게 공부할 수 있고 심지어 민간이긴 하지만 정식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 열정아줌마 아니던가. 바로 수강신청을 하고 강의를 다 듣고 자격증까지 취득해 버렸다. 물론 수업은 무료지만 자격증을 수료하는 데는 일정 비용이 발생한다. 10만 원이 채 넘지 않는 돈으로 무한반복으로 강의도 볼 수 있고 보람 있게도 그럴싸한 자격증까지 땄다.
아직, 내 인생 또는 주변인의 인생을 가지고 타로점을 보지는 않는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뭔가 꼭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제 신점이 아니라 스스로 타로점을 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로를 공부해 보니 그 또한 해석하기 나름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마음도 오래가지 못하고 또 무언가에 의지해서 가려고 할 테지만 이젠 남이 아닌 내가 내 미래를 점쳐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욕심이 많아서 그래... 이 욕망덩어리 아줌마야..!'
좀 내려놓고 살면 될 텐데 바라는 게 너무 많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아야 내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된다던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난다. 내려놓으려 해도 내려놔지지 않는 이 욕망을 과연 내 삶에서 어느 정도까지 버릴 수 있을지. 그래야 내 삶도 이런 기운에 관계없이 내 줏대로 결정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죽을 때까지 나는 내 의지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타로카드는 당분간 나에게 부적 같은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적어도 남에게 키를 넘기고 살았던 과거에서 나에게로 바뀌는 전환기에서 말이다. 카드를 촤라락 펼치고 접고 하는 게 은근히 재밌어서 지금은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있지만 그 또한 찾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