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낯선 땅에 내린 우리는 보스턴에서 날아오는
아들을 하염없이 공항 한구석에서 기다려야 했다.
국내선과 국외선 구분을 못한 나와 작은아들은
큰 아들의 애를 한참이나 태운 후에 큰 아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처음으로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이 나이 되도록 영어 한마디 나눌 일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음료도 사 먹었다.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도 기억에 없지만.
극적으로 공항에서 아들을 껴안고 눈물을 한바탕 흘린 후
큰 아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미국 여행 일정을 시작했다.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서
잠이 들기 전에는 꼭 사이트로 들어가서 독자들의
댓글과 응원을 하루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훗날 이 여행 경험은 소설 속 주인공 신혼여행을 미국으로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아들과 함께 한 여행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한번 풀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것도 킵 해둘 예정이다.
큰 보물과 작은 보물과 함께 한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일주일간 꼬박 시차 부작용을 앓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바빠졌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완결된 소설을 유료란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
주 3회 기존 소설을 쓰면서, 스토리는 건드리지 않고
그사이 조금 나아진 개미허리만 한 실력으로
오타검사와 표현을 조금 손 보면서 1화부터
125화까지 첫 소설을 교정하기 시작했다.
교정하는 동안 나는 내내 좌절했다.
첫째. 너무 부족한 나의 글에 좌절했고.
둘째. 왜 125화까지 써야만 했냐고!
나중에 보니까, 70회 차나 80회 차까지 쓴 소설도 많던데
왜, 나는 120화를 고집하며 이렇게 길게 썼냐고 나를 질책했다.
그만큼 내 소설을 읽으면서 손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하루에 최소한 5화에서 길게는 10화까지
교정을 했으니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나는
누가 시키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교정을 마칠 즈음 세 번째 연재하던 소설이 베스트리그에
당당하게 1위에 올라섰다.
여전히 기쁘기는 했지만, 나는 예전처럼 가슴 벅차게
호들갑 떨며 좋아하지는 않는 경지에 올라섰다.
이제는 1위에 올라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순위가 5위안에서 등락을 하기는 했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시리즈에디션에 뽑힐 정도의 글이 아니라서
나는 스스로 출판을 하기로 선택했기에 베스트리그
유료란에 내 소설을 올렸다.
시스템에 약한 오십 대의 중년 아줌마는 당연하게
한방에 올리지 못하고, 몇 번의 착오나 실수를 반복하며
눈물겹게 자체 전자출판에 성공했다.
새로운 것은, 처음 시도할 때만 어렵지 한번 경험하고 나면
별거 아닌 게 당연한 것처럼, 나는 용기를 얻어
이참에 두 번째 소설도 유료란에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까짓것! 출판 안 해주면 내가 하면 되지 뭐
출판? 까짓 거 별거 아니네. 시건방을 떨면서.
그렇게 세 번째 소설을 연재하면서 나는 완결된
두 편의 장편소설을 자체 출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시스템을 들락날락 거리며 내가 가장 잘하는
스스로 학습을 하며 익히고, 터득한 결과였다.
상상되지 않는가? 오십 대 아줌마가
혼자 끙끙 앓으며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는 모습이.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