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선생님은 학생들이 집중을 못하거나 떠들면 "이놈의 손아"라고 하시곤 했다. 예끼 같은 말이다. 미워서 하시는 소리가 아닌걸 알았다. 그 말씀을 하시면 우리는 알아서 좀 조용하고 집중하게 되는 그런 말이었다.
우리의 선생님들은 그랬다. 분노와 경멸의 말이 아니라 혼내는 말 속에도 더 바른 방향으로, 더 나은 태도로 살라는 혼냄이었다. 혼내는 소리에도 존중이 있었고 배려가 있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언어가 참 민망하다. 고성은 당연하고 꽥꽥이니 X팔계니, 욕설과 비속어, 조롱이 실시간 라이브로 흘러나온다. 죽 지켜보고 있어도 대체 막말들이 왜 나왔는지 맥락을 알기 어려울때도 많다. 분명 정치의 언어는 이렇지 않았다. 의원들이, 정치인들이 화를 내더라도 그 안에는 열심히 준비한 정책과 명분이 있었다. 내 의견이 좀 더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롱하지는 않았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내가 잘났다는 걸 증명하거나, 상대가 나보다 못났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먹고 사는 일이 아니던가. 내가 더 선명하고, 착하고, 떳떳하다는 걸 드러내서 나를 돋보이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런데 요즘의 정치인들은 상대 진영의, 상대 당을, 상대 의원과 정치인을 비난하고, 조롱해서 내가 잘났다는 걸 드러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참신한 조롱과 뜨거운 분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특히 화내고 조롱하는 장면을 1분 내외로 편집해서 숏폼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게 정치인의 1순위 과제가 되어버렸다. 1분짜리 영상에 무슨 논리와 내용이 있겠는가. 그저 격한 감정만 담아내는 것이다. 내 지지자들에게 그저 상대방을 미워하고 조롱하는데 함께 힘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우리 의원이 뭔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는데 상대 의원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알겠는가. 대화와 소통은 없고, 호도와 선동만 열심이다.
정치 방송을 하면서 여든 야든 비판을 하면 으레 따라오는 댓글이 있다. "쟤네는 ~~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느냐"다. 상대가 못나고 부도덕하다면 우리도 못나고 부도덕해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상대가 뇌물에 직권남용에 온갖 범죄를 일삼았다고 해서, 상대보다 덜하기만 하면 우리 편이 범죄 저지르는 건 괜찮은 일인가. 그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자세인가.
우리의 정치가 정말로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정치라면, 상대가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말도 한 번은 들어보고, 두 번은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양당 지지율이 50%씩 쪼개지는 대한민국이라면 상대의 말을 들어봐야 과반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따지자면 질문이 끝도 없다.
세상은 더 빨라지고, 짧아지고, 급해지고 있다. 1시간 영화는 고사하고, 5분도 견디기 힘든게 요즘의 미디어다. 그런데 정치가 그 추세에 아주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거친 말과 행동이 있어야 인기를 얻고, 표도 얻고, 후원금도 걷는다. 정책과 예산에 대해 깊이 공부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지는 모양새다. 당연히 국민에게 좋은 정치가 아니다.
이 와중에 유튜브만 행복해진다. 점점 더 자극적인 영상을 추천해서 보는 이들이 분노에 차 계속 영상을 보면, 광고비는 알아서 쌓인다. 알고리즘이 더 독하고, 짧고, 매운 것들로 가득한 무대로 사람들을 모으고, 정치인들은 무대에 서기 위해 독한 쇼맨십을 연습한다.
기껏 비판을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 정치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혀가 슴슴한 맛을 찾기 어렵듯이, 자극적인 정치가 진중한 정치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실컷 화내고 독한 말을 뱉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따뜻하고 살갑게 대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이제는 자극적인 정치가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비판은 해야한다. 정치가 물러지면 피해는 국민이 본다.
혼내지 말고, 지적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품격을 생각하고 좋은 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을 내도 존중과 배려를 담아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마치 "이놈의 손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