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와 전화를 하다, 요즘도 음악 같은 거 하냐고 친구가 물었다.
그 말에 ‘아 뭐, 아 뭐.’라고 대답했다.
곧 죽어도 ‘아니’라고 하긴 싫었나 보다.
2.
2년 동안 쉬다가, 다시 지판을 잡고 줄을 눌렀을 때, 그 어색한 감각을 기억한다. 손가락 근육이 약해져 있어 크로매틱을 할 때, 다리 풀린 사람처럼 손가락이 흔들리고, 말랑해진 손끝으로 울퉁불퉁한 코일의 표면을 짚는 그 느낌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반갑지 않았다.
반갑지 않은 재회는 두 가지 걱정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다시 칠 수 있을까?’였고, 다른 하나는 ‘다시 다치는 건 아닐까’였다. 첫 번째 걱정은 하루 종일 연습을 해도 모자랄 실력이었는데, 그 정도조차도 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고, 두 번째는 비정상적으로 복구된 디스크를 억지로 돌리다 또 같은 우를 범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아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엉키면, 올바른 사고는 벽에 던진 찰흙과 같다. 신경질 내며 던졌지만, 결국엔 자국을 지우기 위해 본인이 고생해야 하는 것이다.
고생을 꽤 한 편이라고 생각해도, 아직 충분하진 않은 것 같다. 배부른 소리를 또 하고 있으니.
3.
놓칠 것 같다. 지하철을 탈 때도, 길을 걸을 때에도, 잠들기 전에도 느닷없이 그런 조급함에 습격을 받곤 한다. 이런 식으로 살다, 이런 사람으로,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을 때, 가끔 소름이 돋는다.
웃기는 건, 이 와중에도 아무도 안 보는 만화 3부작은 다 그려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는 사실이다. 더 웃긴 건, 몹시 진지하게 안심했다는 것이다.
밀도 높은 긴장감은 정신건강에 해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맑은 날씨에 오후에는 강한 바람에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정도의 외출복을 점검하게 하는 친절한 예보가 되기도 한다.
가진 옷가지는 별로 없지만, 더운 날엔 그늘 따라 걷고, 추운 날에는 볕 따라 걷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4.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살아간다는 건 때때로 좋은 일이다.